정해성 축구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에서 제5차 전력강화위원회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4.2

정해성 축구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에서 제5차 전력강화위원회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4.2 ⓒ 연합뉴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새 사령탑 선임이 난항에 부딪혔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차기 감독으로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제시 마쉬 전 리즈 유나이티드(잉글랜드) 감독이 캐나다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캐나다 축구협회는 14일(한국 시간) "마쉬 감독을 캐나다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으며, 계약 기간은 2026년 7월까지"라고 발표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2월 카타르 AFC 아시안컵 성적 부진과 불성실한 근무태도 등의 문제로 위르겐 클린스만을 경질한 이후 벌써 3개월째 새로운 감독 후보를 물색해왔다. 협회가 당초 우선순위로 검토했던 것은 국내파 감독이었다.

하지만 K리그 현직 감독들의 대표팀 차출은 프로축구 팬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또한 3월 A매치에서 임시 감독직을 수행하며 유력한 차기 후보로 급부상했던 황선홍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최근 U-23 아시안컵에서 40년 만에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대참사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A 대표팀 감독 후보에서 지워졌다.

무리하게 황 감독의 A대표팀 겸직을 밀어붙였던 협회는 더욱 곤란한 처지에 몰렸다. 결국 다시 외국인 감독 영입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협회가 우선 순위로 낙점했던 외국인 감독들과의 협상이 순탄하지 않은데다, 재정 문제와 촉박한 A매치 일정까지 겹치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최근까지 협회가 대표팀 차기 사령탑 최우선 순위 후보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제시 마시(미국) 감독은, 결국 한국이 아닌 캐나다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 것이 확정됐다. 마시 감독의 영입을 두고 캐나다와의 경쟁에서 밀린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연봉 문제로 추정된다. 마시 감독은 직전 소속팀 리즈에서 350만 파운드(약 60억 원) 가량의 연봉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임 대표팀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이 받았던 220만 달러(약 30억 원)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는 마시 개인의 연봉이며 외국인 감독과 동행하게 될 코치진 사단까지 포함하면 액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뜩이나 클린스만의 경질 위약금과 천안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 건립 문제 등으로 재정적 여유가 없는 협회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규모였다.
 
마시 감독의 영입 불발은 협회의 초라한 현 주소를 또 한번 극명하게 보여준 해프닝이다. 마시 감독은 축구계에서는 주류인 유럽이나 남미가 아닌, 미국 출신이고 거스 히딩크나 파울루 벤투 같은 역대 외국인 감독들에 비해서도 몇 수 아래의 커리어다. 이 정도의 감독을 영입하는데도 돈 문제로 퇴짜를 맞아야할 정도라면, 그보다 더 수준급 외국인 감독들에게는 명함조차 못 내밀 수준이라는 얘기다.

마시 감독의 영입이 무산된 지금, 대안은 있을까. 협회는 차기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외국인 감독으로 방향을 굳히면서 6, 7인의 최종후보 리스트를 선정했다. 국내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에르베 르나르(프랑스) 프랑스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세뇰 귀네슈(튀르키예) 전 튀르키예 감독, 헤수스 카사스(스페인) 이라크 대표팀 감독, 브루노 라즈(포르투갈) 전 울버햄턴 감독, 바스쿠 세아브라(포르투갈) 이스토릴 프라이아 감독 등이 현재 물망에 오른 인물들이다.
 
이중 축구 팬들의 지지가 가장 높았던 르나르 감독의 경우, 이미 마시 감독보다 먼저 4월에 접촉했으나 축구협회와의 협상이 최종적으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후보군 중 가장 지도자 커리어가 화려한 '지한파' 귀네슈 감독의 경우, 72세라는 고령으로 인해 최종결정권자인 정몽규 회장이 영입을 거부했다는 보도가 튀르키예 언론에서 나왔다.
 
남은 후보군들 역시 전망이 밝지 않다. 카사스 감독과 라즈 감독은 마시와 마찬가지로, 감독으로서 국제대회를 지휘한 경력이나 성과 모두 부족하다. 또한 카사스 감독은 현재 이라크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어서 한국으로 영입하려면 위약금 문제까지 감수해야한다. 무엇보다 이들 중 누구도 국내 축구 팬들의 눈높이를 충족할만한 커리어를 보유하지 못했다.

협회는 당초 5월 중순까지는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오는 6월에는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일정이 있고, 이 경기가 새 감독의 데뷔전이 될 것이 유력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들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이제 협회는 돈과 시간, 양쪽에서 쫓기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현 시점에서 그나마 축구협회가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플랜B'는, 다시 한번 임시 감독 체제로 6월 A매치 일정을 소화한 후 9월 북중미월드컵 최종예선에 맞춰 새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다. 한국 대표팀은 이미 3월 태국과의 A매치 2연전에서 1승 1무를 거두며 승점 10점(3승1무)을 확보했다. 남은 2경기를 모두 패하지만 않으면 조 1위로 최종예선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한국의 잔여 일정은 6월 6일에 열리는 싱가포르전(원정)과 11일로 예정된 중국전(홈)인데 여기서 한국이 패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난 아시안컵 선수단 내분 사태도 전임 황선홍 감독이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수습해놓은 상태다. 다시 한번 임시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고 해도 성적이나 선수단 관리에 대한 부담은 적은 편이다.
 
비록 황선홍 감독이 사실상 낙마했지만, 지난 3월에도 임시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던 박항서 전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나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 등이 아직 재야에 남아있다. 이들은 모두 능력이 검증된 인물들인 데다 현재 맡고 있는 소속팀이 없어서 대표팀 임시 감독을 수행하는 데 제약이 없다.
 
또한 임시 감독 시즌2 체제로 정식 감독 영입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면, 국내파 감독을 다시 후보군에 포함시키거나 유능한 외국인 감독의 후보군을 넓힐 수 있어서 선택지가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는 이점도 존재한다.
 
국내 축구계와 전문가들 일각에서는 현재의 한정된 후보군 안에서 돈과 시간에 쫓겨 섣불리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다가 또다시 낭패를 보느니, 차라리 국내파 감독을 영입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론을 고려할 때 K리그 현직 감독의 차출은 어렵겠지만 그 외에도 실력 있는 국내파 감독들은 적지 않다. 지난 3월의 황선홍 감독처럼, 6월의 임시 대표팀 감독이 될 국내파 감독이 정식 사령탑으로 가기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고 있는 신태용 감독도 "언젠가 다시 한국 대표팀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에 위약금을 지불하고서라도 데려오는 선택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외국인 감독의 경우, 유럽축구 시즌이 종료되고 비시즌인 6, 7월에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는 감독들이 대거 시장에 나오게 된다. 타이밍과 운이 맞아떨어진다면 히딩크나 벤투처럼 경력에 비해 일시적으로 주가가 낮아진 감독을 합리적인 가격에 영입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월드컵 단골 손님이자 손흥민-이강인-김민재같은 유럽파 스타 플레이어들을 보유한 한국축구 대표팀은, 월드컵을 꿈꾸는 외국인 감독들이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한국축구는 경솔한 감독 선임이 어떤 부작용과 후폭풍을 불러오는지 클린스만과 황선홍의 사례를 통해 뼈 저리게 확인했다. 다시 한번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여론의 비판에 쫓겨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급할수록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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