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신한은행(29승 3패)의 정규리그 우승이 이미 확정된 2008-2009 KB 국민은행 여자농구 시즌에서 최근 타이틀 스폰서팀인 천안 국민은행 세이버스(9승 23패)의 '파죽의 3연승'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국민은행은 이번 시즌 연고지인 천안시에서의 경기장 사용 문제와 조성원 감독의 사퇴, 그리고 13연패라는 팀 창단 이후의 최대의 '굴욕'을 겪으며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특히 1월 19일까지 53일간 계속된 13연패는 국민은행에게 꼴찌의 문턱까지 가게 하는 대위기였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1월 19일 천안에서 벌어진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며 지긋지긋한 13연패의 쇠사슬을 끊는 데 성공했고, 연패 탈출의 여세를 몰아 1월 23일 노련한 선수들이 버티는 2위팀 삼성생명마저 격파했으며, 1월 30일 우리은행과의 춘천 원정 경기에서도 짜릿한 1점차 역전승을 거두어 '춘천 공포증'에서 벗어나 3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 결과 한 때 한 게임차로 따라붙으며 5위자리까지 넘보던 우리은행(5승 26패)을 네 게임 차로 따돌리며 탈꼴찌 확정과 팀 사기 급상승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제자리를 되찾은 '에이스' 변연하

 

이번 시즌이 시작되기 전 국민은행의 조성원 전 감독은 우승을 위해 '공을 들여' 삼성생명에서 국내 최고의 득점원 변연하(30,180cm)를 데려왔다. 국민은행팀 전체에서 변연하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변연하 개인의 부담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변연하는 삼성생명 때의 득점력을 여전히 자랑했지만, 팀 전체의 그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로 게임마다 모든 것을 부담해야 했다.

 

한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친 팀은 이기기 힘든 법. 시즌 전의 예상과는 달리 팀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팀의 기둥 변연하는 어깨에 항상 무거운 짐을 짊어지며 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무거운 짐은 차츰 팀의 승리를 좌지우지할 능력을 가진 그의 페이스와 체력을 빼앗아 갔다. 누구보다 팀에 대한 책임감이 큰 그였기에 팀의 연패에 속을 썩혀야만 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변연하는 무너지지 않았다. 검댕이 같이 된 속을 안고 변연하는 이를 악물고 코트를 누볐다. 고생 끝에는 언제나 낙이 오는 법. 결국 끝까지 승리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은 그는 긴 시간만에 천안 홈경기장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기쁨의 눈물은 그에게 제자리를 찾게 해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자신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막는 이미선-박정은이 건재한 친정팀 삼성생명을 상대로 프로 데뷔 이후 첫 트리플더블(14득점 11리바운드 11어시스트)을 달성하며 연승을 이끌어냈고, 국민은행팀에게 함박웃음을 주었다.

 

국민은행이 지난 라운드부터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춘천 호반체육관에서도 제자리를 찾은 변연하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때 상대팀의 그에 대한 밀착 수비와 야투 폭발로 15점 이상까지 벌어져 패배하는 듯했으나 변연하는 포기하지 않았다. 밀착 수비를 피해다니느라 상대 수비수보다 더 빨리 지칠 법 한데도 그는 후반에만 17점을(3점슛 3개) 몰아넣는 기염을 토하며 자칫 대패할 뻔했던 경기를 승리로 돌려 놓았다.

 

변연하의 상승세는 여러 시즌에서 보아왔 듯 한 번 기세를 타기 시작하면 상대팀에게는 가장 무섭다. 게다가 4년 동안 삼성생명에서 그를 국내 최고의 선수로 키워낸 정덕화 감독과의 재결합은 이런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제자리를 찾고 본연의 폭발력을 어김없이 발휘하고 있는 '에이스' 변연하, 많은 팬들은 국민은행의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를 떠나 그의 활약상에 어김없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끈기'로 열세를 극복해낸 국민은행 포스트

 

국민은행은 3연승 중에 2승을 '꼴찌' 우리은행에게 따냈다. 이는 겉보기에 연승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겠지만 우리은행의 김계령(31,190Cm), 홍현희(29,191Cm)가 버티는 더블 포스트진은 국민은행에 그동안 우위를 점해왔기에 가치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국민은행의 포스트를 책임지고 있는 정선화(25,184cm), 김수연(24, 185cm), 나에스더(29, 182cm)의 중량감과 기량은 분명 우리은행의 포스트진에 비해 열세에 있다. 특히 국민은행의 포스트진의 에이스 정선화는 부상으로 인해 코트에 다시 나선 지 얼마 안되어 예전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열세를 그들은 끈기로 극복했다. 상대의 강한 포스트를 막느라 파울 트러블에 걸려도, 밀려 넘어져도, 역거푸 실점을 하더라도 4쿼터까지 상대방을 물고 늘어졌다. 외곽에 있는 언니들한테 한 번의 기회라도 더 주기 위해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몸을 날려가며 리바운드를 따냈다.

 

이러한 끈기는 게임 후반 상대의 포스트진을 지치게 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소중한 승리를 따내는 데 뒷받침했다.

 

농구 경기에서는 본래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밀려도 물고 늘어져 끝내 상대를 지치게 하는 끈기도 중요하다. 국민은행의 포스트진은 이를 잘 알고 실천함으로써 어려운 상대에게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연패 시에 잃어버릴 뻔 했던 끈기를 다시 되찾은 국민은행의 포스트진은 국민은행의 앞으로의 약진에 밑거름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작은 고추'의 매운 맛, 김영옥-한재순

 

국민은행의 가드진인 김영옥(36,168m), 한재순(32,165m)은 상대 가드들에 비해 신장이 작다. 하지만 작은 것을 십분 살려 빠르고, 실속있는 농구를 할 줄 안다. 이들은 최근 상대팀에게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다.

 

김영옥은 한때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슈팅가드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 그의 득점력은 그를 지켜봐왔던 팬들이 놀랄 정도로 줄어 들었다.(평균 7.96점) 하지만 그것만으로 김영옥의 최근의 능력을 깎아 내릴 수는 없다. 득점 부분 외에서 실속있는 농구를 하기 때문이다.

 

본래의 빠른 발을 이용해서 상대 수비망을 해집고 주포인 변연하에게 연결하는 패스는 변연하의 폭발적인 득점에 날개를 달아 준다. 그리고 골밑으로의 과감한 쇄도에 이은 센터진에의 교묘한 패스웍은 국민은행의 센터진에게 쉬운 찬스를 열어주어 득점을 손쉽게 만들어 준다.

 

물론 장기인 3점슛도 때때로 보여주며 상대팀에게 고춧가루를 뿌린다.

 

한재순은 드리블이 다소 긴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최근 세 경기에서 김영옥과 더불어 빠른 발을 이용한 재치있는 게임 운영과 알토란 같은 외곽슛으로 국민은행의 새로운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경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던 30일 우리은행전에서 이들의 진가는 승부를 결정지은 4쿼터에서 드러났다. 우리은행의 장신 선수들의 4쿼터 체력 저하로 인한 스피드 저하를 그들은 속공으로 공략했고 결국 짜릿한 역전승을 일구어 내었다.

 

국민은행의 공격 팀컬러인 빠른 농구의 진가를 보여주며 팀의 3연승을 언니로써 충실히 뒷받침해주고 있는 이 두 선수의 존재는 국민은행 벤치에는 웃음을, 상대팀 벤치에는 두통을 줄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행의 화끈한 농구를 즐기는 팬들에게 시즌 막판 큰 즐거움을 선사해 줄 것이다.

 

4위 신세계(14승 17패)와의 격차가 크기에 국민은행의 플레이오프 진출은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기염을 토하며 연승을 달리고 있는 국민은행에게 팬들의 흥미를 북돋아 줄 상위팀에의 '매운 고춧가루 뿌리기'와 검증받은 새로운 지휘관 정덕화 감독이 만들어 가는 '근성있는 농구'를 기대하고 그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정규리그 막판의 여자농구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2009.02.01 14:18 ⓒ 2009 OhmyNews
여자농구 변연하 정덕화 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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