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컴 입장에선 황당한 퇴장일 것이다.
ⓒ ESPN soccernet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이 데이비드 베컴으로 인해 웃고 울 뻔한 한판이었다. 이날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단연 베컴이다. 그는 경기 전부터 월드컵 본선행에 강력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경기를 임하는 자세가 사뭇 남달랐다.

소속팀 레알마드리드가 시즌 초 3연패에서 벗어나 4연승을 거둔 데는 베컴이 중앙에 얽매이지 않고 측면까지 폭넓게 움직인 게 한몫 했다. 베컴은 8경기에서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팀 연승 행진에 일조하고 있다. 또 소속팀에서의 선전을 이어 위기의 에릭손 호에서 맹활약, 눈부신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반전 잉글랜드가 경기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베컴의 날카롭고 정확한 '킬 패스'가 연발된 데 있다. 오른쪽 미드필더로 명성을 높은 베컴은 어느 순간부터 중앙 지향적 플레이를 선호하며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포진해 왔다.

그러나 이번 경기에서 그는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오른쪽 날개로 포진해 활발한 돌파력과 패싱 머신답게 특유의 정확한 패스는 최전방 공격수 크라우치의 고공 플레이의 시발점이 됐다. 또한 경기를 꿰뚫는 시야를 바탕으로 같은 선상에 있는 왼쪽의 조 콜에게 향하는 롱패스로 다양한 공격 패턴으로 팀을 이끌었다.

베컴이 본래 포지션으로 이동한 것은 여러 파급 효과를 나타냈다. 지난 북아일랜드 전 0-1 패배 당시 제라드, 램파드와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 4-3-3의 중심이 됐지만 이상하게도 경기는 잉글랜드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이번 경기에서는 램파드와 제라드가 제 몫을 충분히 해냈고, 지난 북아일랜드 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제라드는 공수에서 활기를 띄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경기 전 몇몇 주전 선수들의 결장으로 '수장' 에릭손 감독이 적잖은 걱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좌 우 풀백 애슐리 콜과 개리 네빌이 부상으로 결장했고, 웨인 루니는 경고 누적으로 이번 오스트리아 전 결장이 불가피했다.

주요 공격수들이 결장할 때 장기로 치면 '차' '포' 떼고 한다고 하니, 이번 잉글랜드의 입장은 '마'와 '상'을 잃었고, 루니의 결장은 '차'까지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정확하고 날카로운 롱패스로 세계 최고의 패스 머신 베컴은 '포' 역할을 그 이상으로 해낸 것으로 평가된다.

가혹하게도 슈퍼스타 베컴은 승리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하늘의 질투를 샀다. 후반 13분 연속 경고로 퇴장 명령을 받은 것. 공격 상황에 수비수와 공중볼 다툼 도중 팔로 어깨를 짓눌렀다는 판정으로 경고를 받고, 1분 후에는 수세 때 베컴 자신이 발에 엉켜 넘어진 게 백태클로 간주돼 또다시 옐로 카드가 나와 결국 퇴장 당했다.

사실 경고가 나올 만큼 상대 선수에게 비신사적 행위는 아니었고, 위험 수위가 높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이번 판정은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다. 베컴 입장에선 거칠 것 없이 순도 100%의 롱패스로 지원 사격을 가하다 불운이 따라 안타까움은 더했고 갑작스런 날벼락이 떨어진 격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베컴의 퇴장 이후 페이스가 무너져 전반과 같은 절대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수적 열세로 무승부의 위기에 놓이기도 해 자칫 잘못하면 베컴의 퇴장이 도마 위에 오를 뻔했다.

베컴은 결과적으로 퇴장의 불명예를 안으며 최근 상승세에 있는 리듬이 깨져, 심리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이후 골이 터지지 않아 잉글랜드의 승리로 끝났지만 시대의 영웅이 천당과 지옥의 극과 극을 오가는 피말리는 경험했다.
2005-10-09 13:1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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