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처음 하는 인터뷰 주인공 '쏘카루'가 대만에서 펼치는 대학로 어드벤처 <오마이인터뷰>. 난생 처음으로 즉흥극을 쓰게 된 쏘카루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비루' 한 잔과 함께(제공: 모베러블루스) 관부연락선(?)을 타고 세훈과 함께 즉흥극이 없는 대만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갑작스럽게 몰려든 인터뷰 마이크에 당황한 쏘카루, 알고 보니 그곳은 대본도 보지 않고 연출과 먹지 깔고 계약해야 하는 끔찍한 곳이었다. 쏘카루는 연출 '김탱'을 물리치고 대만과 한국을 즉흥의 늪에서 빠져 나오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즉흥은….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실제로 이런 극은 없다) ⓒ 서정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은 극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역시나 오늘도 하릴 없이 연출과 배우들이 연습실에 모여 있던 차,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갑작스럽게 펑크 난 뮤지컬, 비게 된 극장. 극장을 놀릴 수 없어 급하게 온 섭외 전화에, 일이 없던 극단은 '옳다구나'하고 기뻐하지만 이게 웬걸. 작품은 당장 내일 올려야 한다. 갖고 있는 레퍼토리도 딱히 없다. 하지만 스폰서까지 붙어서 들어오는 간만의 일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냉큼 '하겠다'라고 대답해버리는 연출. 이제 공은 현장에 있는 관객 자문단에게 넘어간다.
작품의 제목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의 이름, 나이, 정체(직업과 종족을 넘어 때로는 사물이다), 꿈, 장점, 단점, 특이점 그리고 명대사와 깨알 같이 PPL에 쓸 스폰서까지 모든 게 관객의 손에 달려 있다. 객석에 앉은 관객은 자문단이 되어 '아무 말'이나 던져 본다. '아무 말 대잔치'가 모여 온갖 괴상망측한 조합이 탄생한다.
예를 들면 성직자가 되는 게 꿈인 39살 무기징역수 '섹도시발'이 펼치는 섹시 끈적 어드벤처 <나 오늘 독방 안 갈래> 같은 작품이 나온다. 주인공은 탭댄스도 잘 추고, 손기술도 좋고, 속독도 할 줄 안다. 다만 도벽이 있고 악령에 잘 씌는 게 흠이다. 누구든지 1분 안에 매료시킬 수 있고, 빨간색 안으로 몸을 숨길 수 있는 특이점은 비밀이다.
이 설정만 가지고 대체 뭘 할 수 있겠나 싶지만 자칭 '어드벤처 전문 극단'의 연출은 '못 먹어도 고'의 심정으로 뻔뻔하게 "다 됐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그렇게 일단 이야기가 시작한다. 정해진 대사는 방금 정한 명대사 한 줄밖에 없다. 노래도 가사는 배우가 알아서 붙여야 한다. 사전에 합의할 시간도 부족하니, 지금 이 장면에서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감도 잘 안 온다.
"나랑 같이 탈옥하자!", "내가 널 어떻게 믿어!"라고 실랑이를 벌이던 와중에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상대역의 어깨를 붙잡고 나직하게 물어본다.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지금 널 믿고 탈옥을 해야 하는 거야?" 어디선가 제4의 벽이 깨지는 소리가 와장창 들린다. 연출이 급하게 마이크를 잡고 울리는 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좋다."
이야기 진행을 위해서는 주인공이 얼른 탈옥을 해야 하는데, 탈옥을 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 급하게 투입된 다른 배우는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간수 역을 맡아 상황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본인이 이미 탈옥했단다. 분명 아까 신까지 탈옥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거 수습을 어떻게 하지?'하는 사이에 어디선가 화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대로 배우는 자신을 죽여서 퇴장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 오첨뮤의 매력 그리고 아쉬움 “프레스콜 때도 말씀드렸던 거지만, 저희는 ‘리미티드 에디션’ 일회용 공연이라서요. 아…. 사실 너무 아까울 때도 많이 있어요. 이걸 더 키웠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캐릭터도 가끔 나오고요. 노래 같은 경우도 즉흥인데 ‘되게 잘빠졌다’ 이런 노래들이 나올 때가 있거든요. 아쉬움도 있지만, 이게 바로 ‘리미티드 에디션’의 매력이 아닐까하는 마음으로 잘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웃음)” ⓒ 서정준
"아니 탈옥을 시켜야 하는데, 탈옥을 아직 못 시켰대요. '그래? 그럼 내가 빨간 모자를 쓰고 나가서 여기에 숨겨서 데리고 나올게!'하고 나간 건데! '웅? 어떡해? 언제 탈옥했어?'하는 그때 딱 화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는데…. 괜히 죽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웃음) 나중에 '어떻게 죽을 줄 알고 바로 화살에 반응을 했느냐'고, '너무 신기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공간의 긴장감, 집중력 이런 게, 아…. 진짜 잠시도 빼놓을 수 없이 너무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스트레스였는데, 이제 점점 재밌어지기 시작했어요."
지난 7월 20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소정화는 그 당시 아찔했던 상황을 어떻게 넘겼는지 활짝 웃으면서 자랑했다. 대체 이래 가지고 공연이 끝은 날 수 있을까 싶지만, 어떻게든 극은 끝이 나고, 관객은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분명 "나는 못하겠다"라고 했었는데
▲ 팀워크를 믿다 “처음에 연습 들어가기 전에 너무 무서워서 (이)영미 언니한테 물어봤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 ‘어떤 연습을 해야 돼?’, ‘어떤 수련의 과정이 필요해?’라고 물어봤는데, 언니가 ‘다 필요 없고, 우선 팀워크가 좋아야 돼’라고 말을 해줬어요. 그거에 대해서 절실하게 느꼈고, 너무 좋은 사람들 덕분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공연하면서 알았죠. ‘아, 되긴 된다!’, ‘서로 믿으면 돼!’, ‘팀워크가 좋으면 돼!’ 이제는 믿고 가는 게 있죠.” ⓒ 서정준
"아트원씨어터에서 초연하는 거 보고, 손을 꽉 쥐면서 제가 더 떨었어요. 객석에서 '어떡해, 어떡해'하면서요. 아무래도 저도 배우이다 보니까, 객석에서 질문 받을 때 왜인지 무대에 도움이 되는 걸 줘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엄청 들었죠. 저희가 오히려 긴장하고 있었지 무대 위 배우들은 잘하더라고요. '아, 나는 못하겠다' 했었죠. 그런데 하고 있네요.
주변에서 공연 보신 분들도 엄청난 존경을 표하고 계세요. (양)승리 오빠랑, (문)태유 오빠가 저희 런 도는 걸 구경하고 갔었거든요. 승리 오빠는 울었고요. (웃음) 태유 오빠는 '<오첨뮤> 배우들이 최고야! 진짜 최고야! 와! 진짜 대단하십니다'라고…. (웃음) 그렇게 격려를 해줘요. '와, 대단하다'고 그런데 '자기는 못할 것 같다'고. 대단하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것 같아요, 배우들한테. 저도 그랬으니까요. '와, 언니 대단하다. 난 못해' 이랬거든요. 그러니 그들도 언젠간 <오첨뮤>를 하게 되겠죠. (웃음)"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아래 <오첨뮤>)에는 전설 같은 괴담이 전해진다. 초연 때 썼던 계약서 뒤에 사실 먹지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강제로 납치당했다든가, 배우가 심신미약 상태일 때를 노려 무의식이 대신 사인을 했다든가, 배우가 사실 김태형 연출에게 거액의 빚을 졌다든가. 물론, 그 어떤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절대 안 해"라고 못 박은 배우, 트위터에서 누가 재연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끔찍한 소리를"이라고 답한 배우가 어느새 재연에서 또 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것만 같다. 대한민국 최초의 즉흥 뮤지컬이라 자부하는 <오첨뮤>는 그런 공연이다. 배우에게 매 회차가 항상 도전일 정도로 힘들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독되는 맛이 있는 작품.
지난해 초연을 봤을 때 "나는 못하겠다"라고 했는데 얼떨결에 즉흥극을 하고 있는 배우 소정화. 작품 속에서도 극단 배우 소정화를 맡아 매번 다른 연기를 소화해야 하는 배우 소정화를 연기하는 소정화의 상황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아휴~. 에너지 소비가 지금까지 했던 공연을 통틀어 제일인 것 같아요. 보통은 하면할수록 약간 여유라는 게 생기거든요. 내공이랄까? 내성이랄까? 다른 작품은 하다보면 그 연기의 근육이 좀 생기는데, 이건…. (웃음) 조금도 적응되지 않는, 늘 새로운 걸 하다보니까 짜릿하기도 하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이래요. 정신적인 소모가 확실히 큰 것 같아요.
제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저 주어지는 그날그날의 다른 옷을 입게 되니까,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는 기분으로 아주 재미있게 임하고만 있어요. 엄청 떨리고, 엄청 긴장하고, 엄청 설레고 그래요. 아직 '버벅버벅'거리는 중이지만, 그런 와중에 '응?!'하는 게 나오기도 해요. 차곡차곡 쌓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일회성이라 빛나는, 소정화라 더 빛나는
▲ 배우치고는 평범한? “연습 때 제가 제일 평범한 사람이더라고요. 처음에 정말 정신없었어요. ‘아니,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났을까’ 싶을 만큼 너무 다들 독특하고, 생각이 되게 독창적이고, 개성 있고…. 그래서 ‘아, 내가 배우치고 너무 평범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 얘기를 했더니 다른 배우들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웃음) 뭔가 말하는 것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이 나올까 싶은 게 너무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 서정준
김태형 연출이 "야, 할래?", "야, 하자!"라고 하길래 "네"라고 답해버린 소정화. 연출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합류한 작품이지만, 소정화는 정작 연습에 들어가고 나니 자꾸만 자신이 없었단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후회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진짜 큰일 났다!', '내가 할 수 있을까?'가 제일 컸어요. 극에 대한 것보다 저 자신에 대한 공포가 더 컸던 것 같아요. 워낙에 겁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고, 낯을 되게 많이 가리는 성격이에요. 소심한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완성되지 않으면 잘 시험해보지 않아요. 음식도 잘 도전하지 않고요. 먹던 거 그냥 먹는 안전주의자인데, 여기는 막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기분이니까. (웃음) 매일이 공포였어요, 처음에는. '저 사람들 어떻게 저래? 다 약 먹나 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래서 '자기 전에 무슨 생각해? 무슨 책 읽어? 무슨 영화보고?' 막 물어보기도 했어요.
너무 결이 저만 다른 것 같았죠. 연습할 때도 제가 부르면 노래가 다 우울한 거예요. 저희는 웃기고 재밌는 코믹 요소가 많은데, 제가 약간 마이너 감성이라서 그런지 저만 부르면 너무 다크해지고, 거기서 막 으아아아! 좌절하고, 너무 진지해 버리니까. '내가 틀린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다르다'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틀리다'라고 생각하니까 움츠러들게 됐죠. 그런데 연출님의 조언도 있었고, 동료들의 격려도 있었고…. '너는 너대로 너의 색깔이 있어'라는 말도 듣고, 다른 배우들로부터 '선물'도 받다보니까 활기를 되찾았죠."
무대 위에서 배우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법에 대해 배웠다는 소정화. 자신이 주는 선물을 상대가 버리지 않고 잘 받아주는 모습을 보며 안정을 찾았다. 그러자 소정화는 한 걸음 더 욕심을 냈다. 안 그런 배우가 어디 있겠냐만, 그는 매번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깊이 파고들며 탐색한다. 비록 즉흥극이지만, 오늘 한 번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을 캐릭터이지만, 그 캐릭터의 감정과 생각을 관객에게 잘 전달시키고 싶은 욕심. 그래서 그 캐릭터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싶은 욕심.
▲ 배우들끼리 나누는 선물 “연출님도 얘기하셨던 게 ‘모든 것을 선물이라고 생각하라’였거든요. ‘즉흥에서 이 사람이 이렇게 나왔어! 그러면 그걸 선물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즐겁게 받고 너도 다른 선물을 줘.’ 이게 기브 앤드 테이크가 되면서 즉흥극이 흘러가거든요. 선물을 주면, 버리는 친구가 없어요. 이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줘도 난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 어떻게든 해!’하면서 마음을 편해지게 만드는? 그런 걸 해주는 친구들이에요.” ⓒ 서정준
"모든 공연에 임할 때, 캐릭터 분석에 들어가면 '왜'라는 걸 되게 많이 찾거든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고, 왜 이렇게까지 할까' 그 이유에 대해서 추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랬을 때 캐릭터에게 연민이라는 게 생겨요. 그리고 그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잖아요. 아무래도 그걸 많이 표했던 것 같아요.
물론 즉흥극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캐릭터를 깊이 있게 분석하거나 추적하기는 어렵거든요. 저희가 보이기에 심플하고 '에이, 너무 뻔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뻔한 감정을 서로 같이 공유할 수 있도록, 빠른 시간 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요. 이 작품을 하면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을 제대로 보여주자'가 제 나름의 목표인 것 같아요. 결국은 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교감을 잘 표현하고 싶어서…. 저도 잘 듣고 잘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결국 이야기는 '메시지'로 귀결됐다. 관객이 인물에게 이입하도록 하는 건, 그 인물이 전달하는 서사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것이다. 이야기에는 정서가 담겨 있고, 그 정서는 휘발되는 감정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알려주고자 하는 주제로 연결된다. 스스로 "고르는 작품들을 보면 메시지 색깔이 짙다"라는 소정화에게, <오첨뮤>는 그저 배우의 순발력과 재치만으로 승부를 보는 극은 아니다.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도 그거예요. 저는 극이라는 게 해학이나 풍자를 통해 메시지를 함축하고, 약간 돌려서 이야기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저희의 역할이고, 저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오첨뮤>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많아요. 되게 풍자도 있고요. 또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뮤지컬이어서 너무 좋거든요. 이게 일회용 공연이라서 한 번 쓰고 버리는 거라고 치부될 수 있지만, 처음이라서 더 귀하기도 하거든요. 그 상반된 느낌을 또 저희가 다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한테 다시 오지 않을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어요. 장난치듯이 하고는 있지만, 우리는 오늘밖에 살지 않으니까요. 너무 심오한 것 같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당신의 인생이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그 인생을 매순간 처음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오늘의 중요성을 메시지로 담고 있는 극이라고 저는 묵직하게 생각합니다. (웃음) 너무 꿈보다 해몽인가?"
배우와 관객이 함께, '같이의 가치'
▲ 배우와 연출의 비율 “연출님이 그리고 있는 그림…. 길이 있고요. 길을 이렇게 제시해주면, 대사는 저희들이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길이 약간 틀어지면 연출님도 거기서 그걸 선물 받아서 또 바꿔주세요. 이름이라든가 세계관을 힌트 삼아서 ‘이런 걸로 가면 어떨까요’하는 합의라고 할지 회의같은 걸 해요. 정해진 건 하나도 없어요. 비율을 따지자면 어느 때는 7:3이 되기도 하고, 9:1도 되기도 하고 대중은 없어요. 거의 대사는 저희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서정준
'꿈보다 해몽'이라기에는 <오첨뮤>가 가지고 있는 감동의 크기가 만만치 않다. 그날그날에 따라 더 재미있을 때도 있고, 덜 재미있을 때도 있다.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되기도 하고, 산으로 가다가 산을 넘어서 안드로메다로 가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잘 뽑혔든 아쉬움이 남든, 그날의 공연은 그날 하루의 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이지만, 그 함께한 오늘의 기억을 공유하며 연대를 만들어 간다.
"각자의 삶이 보잘 것 없는 삶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되게 오합지졸 같고, '우당탕탕'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결국 웃으면서 보러 오셨다가 울고 나가시기도 하거든요. '이상하게 감동이 오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거예요. '너무 어설프고 허접하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어설픔은 관객분들이 채워주시기도 해요.
아, 이 어설픔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하나의 완성된 극을 보고 나가시는 관객분들이 꼭 계시거든요. 그랬을 때 함께 만들어가는 것의 가치를 가지고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이 극은 우리가 같이 만드는 거구나', '내일이 없을 것처럼 오늘을 감사해보자', '보잘 것 없는 삶이지만 내일은 또 다른 일이 일어날 거야' 뭐 이런 메시지를 느끼시면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같이'의 가치라는 것. 오? 이거 라임 죽인다! 그런데 같이 해서 가치가 있어요, 진짜로. 이게 저희끼리 그냥 오합지졸처럼 있으면 재미있을 리가 없어요. 그런데 저희도 처음이고, 공연 보는 분들도 같이 처음이잖아요. 그 처음이라는 시간을 같이 공유하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우리만 아는 거야!'라는 약간 아지트 같은 느낌이 있어요. 이게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 오신 관객들 보시기에 좋게 하는 게 맞죠. 다시는 못 보니까. 망했을지언정! '망했네, 오늘'이라고 해도 '같이 망한 거야!'가 되는 거고, 또 성공하면 '같이 성공한 거야'가 되는 그 매력.
극 중에 배우가 말도 안 되게 죽어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건, 관객분들이 마음으로 채워주시고 계시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이해되는 부분을 채워주신다는 느낌이 와요. 배우로서 제가 느끼고 있는 걸, 관객분들이 느끼고 계시다는 게 연기하고 있을 때도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진짜 '아, 오늘 공연 보람 있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 “회의해요, 회의. 말도 안 되는 회의. (웃음) 주인공의 역사를 만들어줘야 하잖아요. 찰나의 시간에 저희는 진짜 ‘반짝’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나올 때가 되게 많거든요. ‘너는 어떻게 할래?’ 이런 식으로 자꾸 물어보죠. ‘이렇게 가면 어때?’, ‘저렇게 하면 어때?’ 하는데 사실 그 시간 안에 합의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합의가 안 된 채 나가는 것도 되게 많아요. 그러면서 거기서 만들어지기도 해요. 저기서 어떤 걸 원한다고 한들, 여기서 꼭 그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되게 신기한 일들이 되게 많이 일어나요. 화학작용처럼, 거품이 일어나기도 하고 색깔이 변하기도 하고!” ⓒ 서정준
"관객과 같이 시간을 공유한다는 게 기분이 좋다"는 배우 소정화.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 <헤드윅>의 이츠학, <사의 찬미> 윤심덕 같은 캐릭터도 언젠가 하고 싶단다. 연극을 너무 하고 싶은데 시켜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카포네 트릴로지> '로키'의 롤라 킨도 탐을 냈다. 도전하고 싶은 역할, 앞으로 배우로서 걸어갈 길에 대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그에게, <오첨뮤> 삼연에도 참여할지 물어보았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첨뮤> 삼연 오면..."에서 즉답이 돌아왔다. "아니요!"
"아니, 이게 되게 다음에 안 할 거예요! 이런 말이라기보다는, 수련의 기간을 겪은 뒤에 다시 참여하고 싶어요. 정신적으로 제가 성장했을 때 오면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은데…. 저도 인간이고, 아직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잖아요. 간접적인 경험이라도 많이 하고, 좀 지식도 쌓이면 레퍼토리도 생길 것 같아요.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공부가 있으면 좀 더 자신감 있게 즐기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공연하고 바로 다음에 또 한다면, (이)정수 오빠가 말했던 것처럼 '바둑인데 더 이상 둘 데가 없을 것 같다'예요. 저희는 한 번 쓰고 소진하고, 또 한 번 쓰고 소진하고 하니까…. 조금 재충전과 에너지를 비축한 다음에 한다면 그때는 당연히 참여할 의사가 있습니다…. 라고 일단 말을 해야지. (웃음)"
초연 때 했던 배우들도 재연 때 절대, 다시는, 결코, 무조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게 떠오른다.
▲ 작품이 끝나고 나면 “‘너의 도전은 아름다웠다. 기특하다’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진짜 숨을 줄 알았어요. 공연 올라가면 진짜 집에서 안 나올 줄 알았어요. 정말 악령에라도 씐 것처럼 그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관객분들이 크게 웃어주시니까 그렇게 힘이 나더라고요. 진-짜 재밌어요, 그게. 막 자신 없게 들어왔다가 ‘그치! 괜찮지!’ 이러면서 용기와 분위기도 얻고. 관객들이 그날의 공연을 만들어주시는 분들인 것 같아요. 거의 <오첨뮤>의 창조주네요!” ⓒ 서정준
간만에 재회하는 소정화의 '히카루' |
배우 소정화를 이야기할 때 <팬레터>의 '히카루'를 빼놓을 수 없다. 뮤지컬 <팬레터> 초연부터 재연까지 함께하며, 그녀는 대학로에 길이 남을 만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녀의 별명 '쏘카루'는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최근 국내 공연 작품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작품을 소비하러 직접 원정을 오는 해외 팬들도 늘고 있다. 반대로 해외로 진출한 공연을 보기 위해 항공권을 끊는 우리나라 관객도 결코 적지 않다. <팬레터>가 그 대표작이다. 지난 6월 대만에서 제작발표회를 연 <팬레터>는 오는 17일부터 19일까지 대만 NTT 대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지난 제작발표회에도 참여했었고, 이번 대만 공연을 위해서 출국할 예정인 소정화와 <팬레터>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나눴다.
- 소정화에게 히카루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제가 거울을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저희 세 명의 히카루(소정화, 김히어라, 조지승)의 색깔이 다 달랐거든요. 분석하는 것도 그렇고,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각자 만들어낸 히카루의 모양이 다르고, 그건 연기하는 그 사람이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와 같은 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지거든요. 히카루는 제가 초연 때부터 만들었으니 애착이 안 갈 수가 없어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다 내가 심어서 만든 것처럼, 내가 너고 네가 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도 히카루 안에 많이 넣었고요.
사실 처음에 연출님은 피 한 방울 안나오는 히카루를 원하셨어요. 저는 '왜 피가 안 나와야 되지?'하는 고민도 했죠. 여러 상태 안에서 세 배우가 각자의 해결점을 찾은 게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 배우가 히카루 같은 역할을 만나다니, 정말 제가 운이 좋은 거예요. 어느 여자 배우에게도 너무 매력적인 역할일 뿐만 아니라 (이)규형 오빠나 (김)종구 오빠도 다음에 무슨 역할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히카루라고 할 정도에요. 너무 매력적인 배역이기 때문에 정말 너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 '피가 나오는 히카루'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저는 세훈을 많이많이 사랑하는 캐릭터로 구축했어요.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데 말 못하고 억눌려져 있고, 참아야하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그러다보면 안에서 뭔가 생기잖아요. 저는 그게 히카루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나오겠다'고. 그게 확장되면서 실체로 나온 것으로 보이길 바랐어요. 결국은 세훈을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발현된 히카루이기 때문에, 사랑과 희생이 빠지면 제 히카루는 약간…. 껍데기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 <팬레터>가 이렇게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요? "굉장히 여러가지 소스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왜 이렇게 사랑을 받을까?'하고 생각을 해보다보니 조금 알겠더라고요. 우선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이지 않고요. 주체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약해 빠지지 않았잖아요. 그게 우선 관객들이 봤을 때 속 시원할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군가의 팬이신 분들의 입장에서 세훈이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진 선생님에게 팬레터를 주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세훈이에 대해서 자신을 대입해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경성 시대가 너무 멋들어져요. 음악도 너무너무 좋고요. 모든 게 참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 대만은 어땠나요? "더워요. (웃음) 1박2일로 가서 일만 하고 왔는데, 저는 제가 엄청난 한류스타가 된 줄 알았고요. (웃음) 엄청 많은 매체에서 오셨어요. 그, 있잖아요. 막 마이크들이 '우다다' 와 가지고 인터뷰를 하는데, 태유 오빠랑 저랑 당황했어요. 정말 신기했죠. 지금 대만도 그렇고, 또 중국도 그렇고, 제가 일본 공연 갔을 때도 그쪽에서 관심이 많으셨거든요. '해외에서 한국 공연문화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무대공연 쪽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구나'하는 긍정의 씨앗을 보고 왔습니다."
- 부담스럽진 않으셨나요? "재밌었어요. 처음 겪어보는 거라 너무 재밌었고 신선했어요.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국에 와서 공연을 보고 돌아가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 분들은 우리 공연에 대한 정보가 있으셨죠. 작품을 보고 나서 저희를 만나게 되니까, 저희가 신기하셨나 봐요. 제작자분들도 되게 친절하고, 되게 잘해주시더라고요."
- 국내 지방 공연과 해외 공연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매우 달라요. 일본에 제가 <싱글즈>로 공연을 갔었거든요. 그때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리말로 하면 알아들을까?', '자막을 보느라 우리를 볼 틈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그때 경험 덕분에 이번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우리나라 관객들 앞에서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확연히 들기 때문에…. 약간 국위선양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포부도 좀 생겨요."
- 대만 <팬레터>를 보시는 분들 중에는, 그곳까지 보러 가신 우리나라 관객들도 계실텐데. "대만까지 와주시는 분들 진짜 너무 감사하죠. 저에게 계속 <팬레터> 그립다고, 히카루가 보고 싶다고 많이들 말씀하세요. 그런데 '안 되겠어요. <팬레터> 보고 싶어서 월차 냈어요! 그래서 대만 가요!' 이런 분들 보면 '와, 진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더 잘해야겠다', '관객들과 자주 만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되게되게 큰 마음이잖아요. 대만 그 멀리까지 우리 공연과 캐릭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러와 주신다는 건 정말 무겁고 커다란 마음인데…. 그걸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잘해야죠. 여름휴가를 저희를 보러 쓰시는 거니까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더 잘하려고요. 그 분들의 마음과 응원을 받으면서, 정말 다 한 분씩 만나서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