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 앞의 수식어요? 창작자, 아티스트가 가장 가깝네요.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소리꾼, 아마도이자람밴드, 음악 감독, 뮤지컬 배우. 이자람의 창작은 여러 장르, 여러 방면에서 펼쳐진다. '내 이름 예솔아'로 4세의 나이에 무대에 오르기 시작해 중요 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이수자가 되었고, 최연소로 <춘향가> 완창 기록을 세우는 등 이미 소리꾼으로는 명성이 자자한 이자람. 그는 <사천의 선인>에서 착안한 사천가, <억척어멈과 자식들>을 모티브로 하는 억척가를 완성했고, 주요섭의 작품을 소재로 작창 하는 등 '국악인 이자람'이자 '공연예술가'로 활약했다.
최근 호평에 막을 내린 연극 <20세기 건담기> 뿐 아니라, 이미 영화와 창극 등 다양한 무대에서 음악 감독을 맡아 작품의 풍미를 더했다. 아마도이자람밴드 역시 그의 예술 창조가 이뤄지는 창구 중 하나다. 그런 그에게 뮤지컬 <서편제>는 너무나 특별하다. 작품을 통해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했지만, 4번째 오르는 작품에 빠지지 않고 출연하는 데는 작품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편제>에서 '송화'로 분하고 있는 이자람을 지난 17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송화와 닮은 이자람
"송화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송화는 어떻게 이렇게 살까'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송화처럼 그렇게 외롭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 4번째 작품을 하면서 왜 송화에게 위로를 받는지 알게 된 거 같다. '다들 이렇게 외롭고, 힘든데 살아가지' '나이 많은 분들은 여태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시지' 이런 감정의 일말의 답을 송화가 해주는 것 같다."
<서편제> 세 번째 공연까지 오르고, 이번 네 번째 공연에 올랐기에, 작품에 향한 마음 역시 예전과 같지 않을 터. 이자람은 관객들이 송화에게 위로를 받는 지점을 본인 역시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가는 길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됐다.
"어떤 작품(연극, 뮤지컬, 창극 등)을 만날 때, '내가 잘 녹을 수 있을까'라는 것에 집중한다. 내가 쓰는 것과 밸런스가 잘 맞을 것인가, 지점이다. 장르를 따지지 않고 하고 싶다. <서편제>는 초연 당시, 이지나 연출이 '네가 가는 길에 도움이 되면 됐지, 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였는데, 정말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고, 모르는 세상도 엿볼 좋은 기회가 됐다."
때문에 이자람은 <서편제> 외의 다른 작품 출연에 대한 물음에 "없다(웃음)"라고 단호한(?) 답을 했다. 그만큼 <서편제>가 가진 의미는 남다른 것이다.
<서편제>는 유봉, 송화, 동호가 가족이 되는 순간부터, 이들이 소리를 찾기 위해 서로의 길을 가지만, 결국 운명이라는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담은 작품이다. 특히 작품 속에서 그려진 가족, 소리, 서양음악 등은 상징성을 지녀 극을 보는 이마다 해석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감동과 동시에 불편한 마음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송화가 아버지 유봉에 의해 눈을 머는 장면 등이 특히.
"원작 소설이 원래 그런 것이지만,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근대 문학은 물론, 조선 시대 문학 등 과거의 예술들이 가부장적이라, 여성이 배제돼 있거나 도구일 뿐이다. 여성이 중심인 내용이 없지 않나. <서편제>를 하면서도 평등을 위해 함구해야 하느냐, 이 예술을 동의할 수 없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생각했다. 이지나 연출이 '송화가 피해자로만 남으면 우리도 같이 추락하는 것이다. 그것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송화가 자신의 욕망이 큰 인물로 표현되길 바랐다. 유봉 못지않게 징글징글한 피를 물려받은 여자였던 것. 혼자 힘으로 소리를 찾는 여자였다. 연출도 그런 여자로 표현하길 바랐고.
사실, 유봉이 송화 눈을 멀게 할 때 진짜, 분노가 끓어오른다. 진짜 화가 나서 손이 떨린다. 그렇게 눈을 멀게 하고 먼저 죽지 않나. 그런 모습에도 정말 부들부들 화가 난다. 누구든 이럴 거 같다. 송화는 동호를 보낼 때도 이미 눈이 멀지 않았나, 눈이 멀었어도 멀지 않았어도 어차피 소리를 찾는 여자가 아닐까, 그런 해석을 했다."
예술가에게, 한이란
여러 장르에서 자신의 색을 덮고 있는 이자람에게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노는 것. 내 안에서 노는 욕망이다. 놀지 않는다면 예술적으로 죽는다고 생각한다. 판소리를 하다가 책임감이 들면 놀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밴드 음악을 하고, 그러다가 책임감이 막중해지면 대본을 쓰고, 그러다 '엉망이다' 싶을 때 음악을 한다. 서로의 일들이 위로로 작용한다.
요즘 으르렁으르렁 뭔가 하고 싶은 게 창작을 멈춘 지 1년 정도 돼서다. 다시 하고 싶다. 첫 순서는 밴드다. 지금은 송화로 살고 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고 좀 게을러져야 뭔가를 할 수 있을 거 같다. <서편제> 끝나면 창작품을 뱉어내고 싶다."
<서편제>에서 '한'(恨)이라는 감정은 빼놓을 수 없다. 유봉은 '한'을 찾아야 한다면서 소리를 지르고, 그 '한'을 찾기 위하는 마음에 송화의 눈까지 멀게 만든다. 이자람은 '한'이라는 감정과 '소리'가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한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서편제>가 '한'이라는 감정만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송화는 꽤 유머가 있는 사람이다. 사실 분노는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삶에서 겪는 수많은 화를 '한'으로만 본다면 편협한 것 아닐까. 송화의 삶을 볼 때, 남편이나 가족도 없던 한 여자가 결국 소리로 인해 자신을 일치시키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소리꾼 이자람이 송화를 분하면서 '닮았다'라고 생각한 지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대를 누비며 밝게 웃다가도, 소리를 할 때는 깊은 소리를 끌어올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동일 인물이라고 싶을 정도로 닮아있었지만.
"나와 송화는 되게 닮았다고 생각한다. 궁상맞은 삶을 안 살 것이라고 부정했지만, 어느 시점에서, 저와 굉장히 비슷하다. '아리아리랑'하고 무대를 돌아다닐 때는 정말 나인 것 같다."
아마도이자람밴드, 음악 감독, 창극의 대본을 쓰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자람이지만, 그가 느끼는 뮤지컬의 묘미는 무엇일까.
"뮤지컬은 상대에 따라서도 (작품의) 느낌이 너무 달라지는 거 같다. 스스로한테 느끼는 감정도 매일 다른데. 살아있는 상대를 만나면 나도 바뀌고, 상대도 달라진다. 같은 김재범인데도 어떨 때는 너무 힘이 없는 모습이라 나를 쩔쩔매게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케어하지 않아도 되기도 한다. 유봉의 대사 중 '네가 소리를 해야 혀!'라고 할 때와,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네가 해야 혀...'라고 할 때는 정말 감정이 다르다. 나까지 '이 아빠 진짜 미쳤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정말 매일 다르다. 그래서 재밌다."
<서편제>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는 말에, 이자람은 당시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서범석과 함께 하는 날이었다. 동호가 떠날 때 유봉을 막 흔드는 장면이 있는데 서범석이 메고 있던 가방이 흘러내려 왔다. 근데 너무 귀엽더라. 그러면서 둘 다 '빠직'하면서 극이 진행됐다. 끝나고 나서 '둘 다 어마어마하게 집중했다'고 대화한 기억이 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서편제>는 '살다보면'으로 시작해 '심청가'로 막이 내려갈 때까지, 많은 곡이 마음을 울린다. 어느 한 곡 여유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긴장의 연속일 테지만, 이자람이 극 안에서 '특히' 힘(감정을 담아)을 줘서 부르는 곡도 있을까.
"가장 무서운 노래가 '살다보면'이다. 힘을 주지 않는 노래는 없는데 그나마 '사랑가'일 거 같다. 좀 못 불러도 되고, 흥얼흥얼, 소리를 배워가는 과정이니까. 싫어하는 건데, '부양가'는 컨트롤이 안 된다. 손끝부터 떨린다. 아버지 유봉이 죽고 나서는 끓어오르는 감정에 발뒤꿈치부터(끌어 올려) 노래하게 되더라."
<서편제>에서 한이라는 감정 외에도 '소리'는 정말 중요한 요소. 유봉, 송화, 동호가 '자신의 소리'를 찾는다. 소리꾼 이자람에게 '소리'란 무엇일까.
"없다. 소리, 찾고 싶지 않다. 소리에는 개인차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너무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득음이라는 표현도 안 좋아한다. 때로는 서로를 찌르는 칼 같은 존재다. 점점 판소리를 모르는 시대인데, 가볍게 사고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자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판소리는 '회귀'였다. 송화에게 소리가 그랬던 것처럼.
"판소리 작업은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결국, 회귀하는 분야고. 도망가고 싶어도 결국 내가 그런 사람이더라. 도망갈 데가 없다. (웃음)
밖에서 봤을 때 이자람은, 정말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자리(라운드 인터뷰)에서 말을 할 기회도 있으니까. (웃음) 무대에서도 다들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때때로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튼튼해 보이는 것처럼, 저들도 잘 견디고 있는 거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에 '톱니바퀴를 잘 돌려보자'한다."
이자람이 무대, 혹은 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아티스트로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지점은 '보다 맛있게'다.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소문난 집이건, 아니건 맛집을 지나치지 않기 때문. 인터뷰 도중 울려 퍼지는 타자 소리에서도 영감을 받는다는 이자람의 말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예술, 창작 활동에 진지하게 빠져있는지를 가늠케 했다.
"저는 (비유하자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국수 가게를 예로 들자면, 손님을 끌기 위해 사람들에게 전단을 뿌리고 광고하는 쪽보다, 국수를 더 맛있게, 다양하게 메뉴를 발전시키는 쪽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판소리의 대중화보다, 보다 가까운 곳에서 '잘' 빚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작품이 잘 만들어지면 (관객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마음이다.
스스로 무대에 서는 것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 발달한 것 같다. 지금 이제, '나는 어느 기로에 서 있나' '어느 것이 행복한가?' 찾아야 할 것 같다. 무대에 서는 것?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 때? 대본을 쓸 때? 밴드에서? 언제 가장 행복할까, 탐구해야 할 것이다. 방향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나도 궁금하다."
▲ 뮤지컬 <서편재> ‘송화’역의 배우 이자람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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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서 창작을 하는 것은 규칙에 위배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떠올라서 만나고 싶어서 하는 것은, 그저 '그 사람과 만나고 싶은 욕망'일 것 같고, 차라리 그 사람에게 커피 신청을 하는 것이 나을 거 같다. 하지만 정말 컬래버레이션을 위한 만남은 멋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