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디 모하게흐 감독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람의 향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만에 정상 개최를 선언한 2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 5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언론에 선공개됐다. 개막작 <바람의 향기>는 이란 국적의 하디 모하게흐 감독의 네 번째 영화로, 이란 남서부 지역인 데다쉬트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러닝타임이 90분인 <바람의 향기>는 중산간 마을에서 살아가는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타인을 돕고, 품는 마음의 아름다움을 조명한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내와 마찬가지로 장애가 있는 아들, 그리고 전력난을 겪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부품을 구하러 다니는 전력국 직원이 등장한다.
특별한 대사 없이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고, 각자의 처지를 간파한다. 전력국 직원은 자신의 통장 잔고 바닥을 보이면서까지 이들에게 욕창 방지 매트를 사주는 등 조건 없는 선행을 행한다. 장애인 사내 또한 동네 노파의 부탁에 기꺼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늘에 실을 꿰어주는 수고를 마다 않는다.
실제 해당 지역 출신인 하디 모하게흐 감독은 "실제 우리 삶엔 사회적 장애, 정신적 장애 등 여러 장애가 있다"며 "그런 장애나 어려움을 대하는 사람의 반응과 태도를 보여주자는 게 영화의 주제였다"고 상영 후 간담회에서 답했다. 또한 직접 전력국 직원을 연기한 것에 "침묵의 순간이 많은 내면의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저만이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하의 무한경쟁, 그리고 이타보다는 이기적 태도가 인정받는 현대사회에서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은 분명하다. 정확히 현대 상업영화나 주류 영화의 흐름과 반대되는 지점에 있다는 게 <바람의 향기>의 특징이다. 한없이 정적인 구도, 느린 컷 편집, 그리고 극히 제한된 대사로 이뤄진 신들을 보고 있자면 낯설게 다가올 여지가 크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등장 인물들이 행하는 여러 일들이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란의 국가적 비극
▲ 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람의 향기>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하지만 <바람의 향기>가 태어난 고향이 이란이며, 그 이란이 현재 국가적 비극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최악의 여성 학대 오명을 뒤집어 쓴 이란에선 연일 사망자 소식이 들려온다. 동시기에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있다.
물론 영화에 담긴 풍광은 아름다우면서도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묘한 슬픔이 깃들어 있다. 감독 또한 그 지점을 포착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이 영화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 내지는 선의의 아름다움을 말하려 한 것은 십분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자칫 이 전도유망한 이란 감독의 선택이 관념적 내지는 현실 회피적으로 다가오게끔 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간담회에서 하디 모하게흐 감독은 다음처럼 말했다. 영화 중 한 노파가 아내의 구멍 난 양말을 수선하기 위해 길가던 장애인 사내에게 바늘에 실을 꿰어달라 부탁하는 장면 이야기다.
"인생은 하나의 순간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계속 추억하고 기억을 불러내는 과정에서 미래에 전달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인간처럼) 늙지 않고 항상 신선함을 준다. 특히 나이 든 사람의 사랑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제게 그 노파 장면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처럼 감독의 의도가 분명했다면, 그 사랑의 날을 보다 현실의 땅으로 가지고 내려왔다면 어땠을까. 참고로 하디 모하게흐 감독은 2015년 <아야즈의 통곡>이라는 작품으로 부산을 찾았고, 당시 뉴커런츠상을 받았다. 미래가 기대되는 만큼 그의 시선이 더욱 영글길 기대해본다.
▲ 하디 모하게흐 감독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람의 향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