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끄는 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해."
애초 오후 4시에 시작했어야 할 퇴진콘서트 '물러나Show'가 늦어졌다. '적폐청산! 6대 긴급 현안 해결을 위한 토크콘서트 <국민의 명령>'이 늦게 끝났고, 공연을 위한 무대 준비가 지체되면서 사회자 김제동의 무대 체류시간도 따라서 길어졌다. "시간을 끌어달라"는 주최 측의 주문에 김제동은 "3시간 무대에 있었는데 1만 원 받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무대와 무대 간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음악 평론가 서정민갑의 진행으로, 밴드 에브리싱글데이가 먼저 무대에 올라 성공적으로 포문을 열었다. 음악과 문화와 저항이 함께하는 2016년 크리스마스 이브, 광화문이었다.
[이한철] "우리의 물길은 졸졸졸 아니라 콸콸콸, 절대 포기 말자"
▲ [9차 범국민행동] 이한철이 부른 진짜 '슈퍼스타'는 '촛불시민' ⓒ 이승열
▲ 가수 이한철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릴 '끝까지 간다! 박근혜 즉각 퇴진·조기 탄핵·적폐 청산-9차 촛불집회' 사전공연 '물러나쇼'에 출연해 노래 <슈퍼스타>를 부르며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유성호
싱어송라이터 이한철은 '좋아요'를 부르며 무대 위로 올라와 흥을 돋웠다.
"제 노래는 밝고 경쾌한 노래가 많고, 그런 기분과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우리가 밝고 경쾌한 기분은 아니잖나. 지금 이 순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뒤로, 옆으로 마주하고 있는 누군가와 마음을 같이 하고 있다.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게 많이 위로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제 등 뒤를 (청와대를 가리키며) 떠올리거나 바라보면 정말 분통이 터지실 것이다. 저도 TV를 볼 때, 다른 토요일날 집회에 나왔을 때 정말 울화가 치밀어 오르더라.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의 물길은 '졸졸졸'이 아니라 '콸콸콸'이지 않나. 우리 절대 포기하지 말고, 멋진 바다를 만나자."
이어서 '흘러간다'와 '슈퍼스타'를 불렀다. 이한철은 '슈퍼스타'의 가사를 "아무 계획 없이 광화문에 왔던 우리"라며 개사해 외쳤다. 광화문 광장에는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슈퍼스타'의 후렴구가 울려 퍼졌다. 이한철은 시민들의 떼창에 "이야, 쥑이네~"라며 감동받은 듯 추임새를 넣었다. "박근혜 즉각 퇴진, 우리는 널 믿지 않아"라며 노래를 마친 그는 시민과 함께 광장에 계속 앉아있겠다며 내려왔다.
[마야] "2014년 4월 16일, 잊지 않겠다"
▲ [9차 범국민행동]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민과 마야가 함께 부른 '진달래꽃' ⓒ 이승열
▲ '물러나쇼'에서 <진달래꽃>을 열창한 가수 마야. ⓒ 유성호
"이렇게 '진달래꽃'을 절실하게 불러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 속으로 들어와도 뜨거운 가슴으로 앉아주셔서 감사하다. 체온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다면, 제 본분을 다하고 내려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잊지 않겠다. 여러분과 함께 배를 띄워보도록 하겠다."
진달래꽃을 부르며 등장한 로커이자 배우 마야는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말과 함께 '뱃노래'를 이어 불렀다. 허스키한 마야의 목소리가 광장을 채웠다. '뱃노래'가 끝나고 나자 시민들은 "마야"를 연호하며 뜨겁게 화답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외치고 싶다. 진실을, 진실을 듣고 싶은 그 마음으로 외치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라는 가사의 '나를 외치다'를 끝으로 마야는 시민들과 이별했다.
윤종신의 '그래도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가 스크린에 나오고, 본집회가 바로 시작됐다. 민변 박근혜퇴진특위 부위원장인 이재화 변호사, 김애란 민주노총 공공노조 사무처장, 시민참여특위 이미현 간사 등의 발언이 현 시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거친 자유발언도 광장에 모인 이들의 아직 달래지지 않은 분노를 표현했다. 장관을 자아낸 소등 퍼포먼스까지 계획대로 진행된 후, '자전거 탄 풍경'이 본집회 무대에 올라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밝혔다.
[자전거 탄 풍경] "아빠가 미안해" 이 말에 시민들 글썽
▲ [9차 범국민행동] 광화문에서 시민과 함께 부른 '너에게 난 나에게 넌' ⓒ 박소영
▲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르며 무대에 오른 '자전거 탄 풍경'. "이런 자리가 아니라 더 즐거운 자리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담담하게 말을 꺼낸 이들은 이어서 '아빠가 미안해'를 불렀다. ⓒ 유성호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르며 무대에 오른 '자전거 탄 풍경'. "이런 자리가 아니라 더 즐거운 자리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담담하게 말을 꺼낸 이들은 이어서 '아빠가 미안해'를 불렀다.
"그래서 아빠가 미안해. 이 어지럽고 탁한 세상에 숨이 막혀 답답하고 지쳐도 어딘가에 있을 너의 꿈을 찾길 바라."
"아빠가 미안해"라는 그 한마디에 세월호를 떠올렸던 것일까. 자리에 앉아 촛불을 흔들던 시민들 중 눈시울을 붉히며 글썽이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아빠가 미안해'가 끝난 후, '자전거 탄 풍경'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본인 약속 취소해가며 같이 와준 친구들 소개하겠다"며 밴드 멤버 한 명 한 명을 호명했다.
"여러분 지치지 마시라. 좀 더 나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주자."
"여러분 각자에게 보내는 응원가"라며 '그 하나를 위해'를 부른 후 '자전거 탄 풍경'은 촛불로 가득한 광화문 풍경 뒤로 사라졌다.
패러디와 분장이 돋보이는 하야체조팀의 하야체조를 끝으로 행진이 선포됐다. 본집회가 끝나고 시민들은 청운동, 삼청동 총리공관, 헌법재판소 등을 향해 행진과 퍼포먼스가 이어질 예정이다. 행진 마무리 집회까지 마친 후에는 '하야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계획되어 있다. 서울재즈빅밴드, 민중가수 연영석, 카운터테너이나 뮤지컬 배우인 루이스초이 등이 무대에 오르며, 이밖에도 다양한 시민들의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가 축제 분위기를 살릴 것으로 보인다.
9번째 촛불이 성탄 전야를 따뜻하게 덥히고 있다. 24일 오후 6시 30분 현재, 주최측 추산 연인원 55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