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공연사진
주식회사 랑
희망 잃은 청년과 꿈 많은 귀신이 만나면
형을 잃고 숨어지내다 어디론가 떠나버리겠다고 나선 해웅은 신비한 힘에 이끌려 쿠로이 저택으로 들어간다. 쿠로이 저택엔 지박령 옥희가 살고 있고, 다른 귀신들도 저택을 넘나든다. 귀신들은 현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못내 아쉬워하며 이승을 맴돌고 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꿈을 이뤄 성불하길, 즉 저승으로 미련 없이 떠나길 갈망한다.
여기서부터 하나의 구도가 그려진다. 해웅에게선 삶의 희망이나 열정을 찾아볼 수 없는 반면, 귀신들에게선 꿈을 이루겠다는 열망이 돋보인다. 해웅의 눈에는 그런 귀신들이 보이는데, 귀신들은 자신을 볼 수 있는 존재가 오랜만에 나타난 것이 반갑다. 그렇게 귀신들의 바람은 더 강렬해진다.
일본 순사에게 쫓기는 동시에 귀신들과 엮인 해웅은 쿠로이 저택에 갇힌다. 해웅은 초기에 어떻게든 저택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귀신들 역시 저택의 닫힌 문을 열고 나가길 바라는데, 그 이유는 사뭇 다르다.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의 의미가 해웅에겐 그저 이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라면, 귀신들에겐 꿈을 이루는 것이다.
해웅과 귀신들은 서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기로 한다. 이때부터 뮤지컬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해웅의 성장이다. 꿈에 대한 믿음을 갖는 한 인간으로의 성장. 희망 잃은 청년이 자신과 달리 열렬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는 귀신들을 만나고 끝내 얻는 것은 '막연한 믿음'이다.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등장인물들은 막연한 믿음으로 헤쳐나간다('막연한 믿음'은 뮤지컬의 말미에 등장하는 넘버의 제목이기도 하다).
물론 희망을 주는 작품들이 으레 간과하는 것은 한 개인이 희망을 잃게 만든 구조적 한계다. 다만 한편으로는 그런 구조적 한계를 탓하며 가져도 될 희망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 많은 건 아닌지 묻게 된다. 그런 면에서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는 관객에게 그런 희망을 가질 용기를 주는, 유의미한 작품이다.
한편 귀신들이 등장하는 탓에 공포 장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한 코미디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연출되지 않고, 귀신들은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친근하게 다가온다. 생각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추가되지만, 서사 구조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 또한 작품의 매력이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활동도 때론 곁가지로, 때론 중심 주제로 다뤄지니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에 따라서도 곱씹을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공연은 2025년 1월 19일까지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