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채> 이수정 배우
씨네소파
- 배우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학창 시절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고 매료됐다. TV에 나오는 사람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공통점을 발견했던 거 같다. 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할 용기가 부족해 일반 대학에 진학해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 어쩌다가 교수님과 친분이 생겨 연기는 잊고 교수님을 따라가려던 일이 잘 안되어 버렸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대학교 3학년 때 사춘기 같은 치열한 고민을 했다.
그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이 좋아졌고, 배우가 된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간절함을 눈치챈 언니가 적극적으로 나서 부모님을 설득했다. 딱 1년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했다. 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연기 수업한다는 대학 선배의 군대 후임의 소개로 입문했다. 만나자마자 대본을 읽었는데 '내 길이다' 싶었다. 열심히 배웠고 남은 학기를 마치고 무사히 졸업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좋은 일, 나쁜 일,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상하게 무언가가 밀어주는 힘이 있었다."
- 연기를 포기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제가 서른이 되면 연기를 그만둘 줄 알았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나 나이 제약도 심해서 그런지. 20대 때는 마치 시한부 선고받아 놓은 사람처럼 연기했던 기억이다. 막상 서른이 되니까 업계 관계자의 말이 틀렸던 거지.. (웃음) 지금 20대 후배를 만나면 지금 잘 놀아야 삼십 대가 달라진다고 말하고 다닌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실감했다."
-그만두려 할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있나.
"팬데믹 때 어렵게 3차까지 봤던 오디션에서 눈빛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10년 정도 이 일을 하면서 헛발질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제자리걸음만은 아니었겠다 싶더라. '조금 더 해' 같은 응원처럼 들렸다. 그리고 이상하게 아르바이트를 잡으면 일이 들어왔다. (웃음) 물론 부모님 집에 있으니까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니었지만 500만 원으로 1년을 버텼다. 그때마다 언니가 사소한 심부름을 시키면서 용돈을 줘서 의지도 많이 되었다. 배우의 길로 밀어준 언니를 부산국제영화제 때 불러서 <한 채>를 보여주었더니 장문의 문자로 편지를 써줘서 감동했다."
- 인생 영화는 무엇인지. 앞으로 특별히 맡고 싶은 장르, 캐릭터가 있나.
"인생 영화는 해외 작품으로는'비포 시리즈'인데, 한국 작품 중에는 <가족의 탄생>이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신념을 간직한 배우가 되고 싶다. 예전에는 뭐든 다 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멜로가 체질>처럼 말맛이 살아 있는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코미디를 잘하면 어떤 연기도 가능하다는 말을 믿고 있다. SNL을 보면서도 저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사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처음 보면 소심하고 얼어버리는 편이라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다만 편한 사람 앞에서는 재미있는 편이다. 삼남매가 부모님 성대모사를 시작으로 누가 누가 웃기나 개그 본능을 감추지 않는다. 웃음으로 경쟁하다 보니까 쌓여버린 노하우다."
- 말맛이 살아 있는 티키타카 코미디도 있지만 대부분은 넘어지고 망가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나 B급 유머가 섞인 장르가 대세다.
"단편 <영지>를 촬영가 기억난다. 아파트 단지에 노상방뇨하는 사람을 경비 아저씨와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찍을 때 '쑥'하고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합을 맞추고 타이밍을 계산하는 것도 재미있고, 모니터링하는 것도 신났다. 광고 촬영장에서도 망가지는 역할이 다수였다. 박카스 선생님 편에서는 민낯이 등장하고, 햇반 광고 때는 눈 돌리며 망가지니까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주저 없이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 생각하면서 빼지 않는 게 저의 장점인 것 같다."
-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한 채>는 어떤 의미로 남을지 생각해 봤나.
"<한 채>는 첫 독립 장편영화이지만 한계를 시험하는 경험이었다. 한계를 정하면 딱 거기까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려되어 한계 없이 일하고 싶다. 촬영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볼까 의문이었는데 부국제를 지나 개봉까지 앞두고 있어 시원섭섭하다. 제가 <한 채>로 떠오르는 샛별이 되고 싶다면 요행이다.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덕분에 많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사람이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일하면 장인이 된다고 하는데 배우는 그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10년을 채우는 마음으로 연기하고 싶다. 10년 후 장인이 되어 있을지 장담은 못 하겠지만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연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길이든 밟아가면서 꾸준한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도 오는 거니까. 영어, 일본어 회화도 준비하고 있다.
또 드라마 <굿보이>를 찍고 있다. 상대역이 오정세 선배님이다. 현장에서 늘 연기 스타일을 관찰하고 배우고 있다. 짝사랑하는 역할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팬이라 아닌척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하고 있다. 선배님의 코미디를 보면서 꿈을 좇게 되었다.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도 조금씩 변주를 주어 늘 짜릿하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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