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의 한 장면.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이 작품은 이른바 '프로'가 만들지 않았다. 주지했듯 전쟁이 터지자 해외 취재팀은 모두 빠져나갔는데 < AP 통신 > 우크라이나 취재팀만 남아 촬영을 이어갔다.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영상기자가 감독, 각본, 촬영, 제작, 내레이션을 도맡아 당시의 참상을 온전히 전하려 했다. 그런데 말이 '온전히'지 죽음을 무릅쓴, 죽음을 상정한 취재였을 것이다.
나의 죽음을 담보로 전쟁의 참상, 전쟁의 실체를 낱낱이 취재하고 보도해 고발하는 건 개인적이라고 치자. 집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 집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들,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을 눈앞에 둔 채 촬영하고 취재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기자로서의 윤리가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극 중에서도 내레이션으로 고민을 전한다. 집을 잃고 실의에 빠져 오열하는 이를 촬영할 때 "촬영을 멈추고 달래야 할지 망설였다"라고. 군인이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하니 "역사적인 전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어요"라고 답하며 시체를 묻는 모습을 촬영할 땐 "뇌는 눈앞의 광경을 잊고 싶어 하지만 카메라는 계속 기록한다"라고 되뇐다. 그런가 하면 의료진은 공격받아 죽어 가는 민간인을 살리려는 모습을 꼭 촬영해 달라고 한다.
그렇다. 러시아는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민간인만 있는 지역을 폭격했다. 용서받기 힘든 '전쟁 범죄'다. 급기야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병원까지 폭격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 작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한가운데가 바로 여기, 민간인들밖에 없는 마리우폴의 어느 일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여 이 전쟁의 성격이 민간인 학살에 가닿아 있다는 것이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를 남기려는 이유다.
"역사적인 전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