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흘> 스틸컷
쇼박스
<사흘>의 주인공과 메시지 역시 일반적인 퇴마 영화와는 다르다. 구마 사제 해신은 철저히 조력자, 보조자 역할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자리는 퇴마 대상인 소미의 아버지, 승도가 차지한다. 시작과 끝만 보더라도 그 의도는 분명하다. 오프닝 시퀀스는 실패한 구마 의식을 보여주는데, 이때 카메라는 해신이 아니라 승도의 시점을 따라간다. 영화의 결말 역시 승도와 소미의 부녀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부성애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는 예상을 벗어나는 공포감을 선사하기에 더욱 섬뜩하다. 사실 겉보기에 <사흘>에서 공포의 대상은 소미여야 한다. 악마에 씐 그녀가 온갖 악행이나 기묘한 사건을 일으킬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예상 가능한 장면도 등장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을 고조하는 역할은 소미가 아니라 승도에게 넘어간다. 처음에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딸을 향한 사랑이 강조된다. 하지만 슬픔이 깊어질수록 부성애가 극단적으로 발현되고, 악마가 승도에게 씌운 듯한 연출이 등장하며 서스펜스가 극대화된다. 편집증적인 묘사는 박신양의 연기력 덕분에 더욱 안타까우면서도 기괴하다.
부성애를 강조하는 스토리텔링은 장르적 목적과도 부합한다. 기독교 기반의 오컬트 물에서는 결국 사람의 믿음이 가장 큰 무기로 등장하곤 한다. <사흘>도 다르지 않다. 소미에게 깃든 악마를 무찌르는 힘이 단순히 구마 사제의 기도가 아니라, 올바른 형태의 사랑, 곧 딸에 대한 믿음이라는 암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든 사건의 원인이 딸을 살리려는 잘못된 부성애였다는 점도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양면성을 오가는 한 끗
승도가 '한 끗 차이'로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편집증적인 아버지를 오가는 묘사는 <사흘>을 관통하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해신의 서사만 봐도 그렇다. 동시에 극 중 오컬트적인 장치에서도 '한 끗 차이'의 모티브를 확인할 수 있다. 소미에게 깃든 악마는 '이그마엘'로 밝혀진다. 그는 나사렛의 한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악마로, 형과 함께 온 마을 사람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다가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에 의해 붙잡혀 이름도 잊히고, 검은 심장 안에 봉인당했다. 그와 동시에 자기 심장을 가진 사람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날 때, 그도 부활한다는 전승도 남겼다.
이그마엘과 관련된 묘사와 전승은 사실 익숙하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까지의 여정을 고스란히 따른다. 그저 주인공이 예수가 아닌 악마일 뿐이다. 이는 결국 일종의 비유처럼 보인다. 전승의 주인공만 바꿔도 부활까지의 사흘이 기쁨과 환희가 아닌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차듯이, 그 어떤 사랑도 중용의 미덕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하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한 끗의 중요성은 <사흘>의 만듦새에서도 확인된다. 우선 퇴마라는 장르적 쾌감이 기대 이하다. 구마 의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부각하다 보니 흐름과 분위기가 예상과 다를 수 있다. 클라이맥스인 후반부 보일러실 장면도 <검은 사제들>처럼 숨 막히고 온몸이 조여 들어가는 듯한 구마 장면은 아니다. 그저 라틴어 기도문을 읊는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전문적인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무엇보다도 색다른 오컬트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과했던 나머지, 전체 그림이 뒤틀려 버린 느낌이 든다. <사흘>은 이그마엘과 러시아 정교회 간의 연결고리를 등장시키면서 한국 오컬트 영화에서 흔하지 않았던 그림을 보여준다.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롭다. 불교, 무속, 가톨릭, 일본과 태국 귀신까지는 다뤘어도 정교회 관련 소재가 한국 영화에서 등장한 적은 거의 없으니까.
문제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러시아 마피아 클럽에서 펼쳐진 이그마엘 소환 의식도 같이 보여준다. 그런데 그 의식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속 재현 영상처럼 조잡하다 보니 앞서 쌓아 올린 서스펜스가 일거에 깨지고 만다. <파묘> 속 굿 장면이 영화 속 긴장감을 강화한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다.
결국 이 장면을 기점으로 <사흘>은 결말까지 극을 세련되게 끌고 갈 동력을 잃어버린다. 이 한 끗을 살렸더라면 앞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검은 사제들>과 유사한 포지션을 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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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