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스틸
피터팬픽쳐스
이와오의 연쇄살인마로서의 재탄생은 겉으로는 풍요롭게 묘사되는 당대 일본 사회가 어떤 모순과 차별 위에 군림하고 있는가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구현된다. 국가 주도로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길들이는 과정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삶이 연달아 조명된다. 그들은 서로 외면하고 적대하거나 혐오하며 병들어간다. 처음 희생자 시신이 발견될 때, 가난한 농민들은 '조센징'이 술에 취해 뻗어 있다며 짜증을 부린다. 이와 대구를 이루듯 이와오와 정분을 통하며 은신처를 제공하는 여관 안주인과 그의 모친 역시 김치를 철마다 담그는 '조센징'이라는 게 밝혀진다.
주인공의 살인과 도피 행각 와중에 가족과도 이미 단절된 지 오래인 게 밝혀지면서, 유일하게 교감하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사회 최하층에 속하는 존재들에 한정된다. 이와오가 가족과 불화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이들과만 교류하는 것도 모두 환경적 요인이 깊숙하게 자리한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차별에 분노하며 반항하지만, 끝내 대안적인 전망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와오는 타인을 상처입히거나 이용하는 것 외에 발전적인 답을 갖지 못한다. 그런 한계가 애꿎은 희생자는 물론 자신마저 망치고 만다.
선과 악의 대결로만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설정은 그의 가족관계에서 극점에 도달한다. 가족 전체가 일본 내에서 억압당하는 소수자이지만, 함께 고난을 극복하기보다는 굴종하며 위선적인 행태를 보이는 부친과 적대하며 자기파멸 행보로 일관하는 주인공의 일생은 출구를 찾지 못한 체제를 향한 분노로 설명할 수 있다. (영화 속 시간대에서 불과 몇 년 후 벌어진) 전공투 항쟁을 경험하며 공감했던 감독과 동 세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환멸과 일본 체제의 한계에 관한 시각이 투영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측면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자신의 작품으로 소신을 관객에게 전하려 한다. 본인 세대는 세상이 변할 수 있다 믿으며 항쟁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하지만 패배에도 불구하고 틈새로 엿본 일본 체제의 폭력과 억압을 용인할 순 없었다. 그런 통찰이 고스란히 녹아든 영화가 바로 <복수는 나의 것>인 셈이다. 전후로 감독은 위안부 문제 다큐멘터리 <가라유키상>, 군국주의 허실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간장 선생>, 착취에 골몰하는 지배자로 인해 짐승의 삶을 사는 농민들의 고통을 그린 <나라야마 부시코> 등으로 집요하게 해당 주제에 천착했다.
즉 이 영화는 물론 감독의 작품세계엔 일관된 원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굳이 추악하고 타락한 하층민들 행태를 소재로 삼고 부도덕한 주인공을 설정하는 건, 그저 센 소재로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꾸기엔 역부족일지언정,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려는 고독한 수행자의 태도다. 그런 배경 아래 <복수는 나의 것>을 본다면, 주인공의 살인 행각을 통해 무수한 생각의 여지를 포착하게 될 테다. 과연 용서받지 못할 살인마 에노키즈 이와오가 무엇을 향해 '복수'하려는지 대답은 그 고민의 끝에서 기다린다. 결론을 내리는 순간 초현실적 결말이 등장한다. 그 장면 앞에서 누구라도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