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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자'를 '창녀'라고 비난하는 당신이 모르고 있는 것

[리뷰] 영화 <아노라>

24.11.11 12:07최종업데이트24.11.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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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노라> 스틸컷
영화 <아노라> 스틸컷유니버설픽처스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쓰레기통에서 뜰채로 수채화 그림을 건질 수 있는 감독, 그게 션 베이커다. 노을빛을 응축한 듯한 색감과 미약한 것을 관조하는 연출법으로 여러 작품을 성공시켰다. <스타렛>,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그리고 올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노라>까지. 그의 작품에는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성 노동자'다.

성 '노동자'라는 표현은 어딘가 어색하다. 아직 '창녀'나 '걸레'로 보는 시선이 익숙한 탓이다. 성 산업에 대한 찬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쉽게 비인격화된다. 때론 그들을 조롱하는 일이 마치 사회 부정을 척결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래서 션 베이커는 관객 앞에 한 여성을 세웠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무식한 여성을 마음껏 비웃어보라고. 과연 우리는 '걸레'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순교자일까.

문란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주인공 '아노라'는 성 노동자다. '애니'라는 이름을 걸친 채 클럽을 돌아다니며 호객 행위를 하는 모습은 불쾌감과 동시에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삽시간에 사람들을 살피며 손님을 고르고, 한두 마디에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전문 기술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신체적 만족감을 준다. 탁월한 소통 능력을 하필 성 산업에 쓴다는 사실만 빼면 아노라, 아니 애니는 성실한 일꾼이다.

그런 그는 러시아 부호 '이반'의 선택을 받게 된다. 1만 5천 달러를 주고 자신의 여자친구 행세를 해달라던 이반은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을 못 이겨 영주권을 얻고자 애니에게 청혼한다. 마약과 술에 취한 채 하루살이처럼 사는 이반의 고백을 애니는 받아들인다. 에둘러 돈 보고 결혼하는 거라고 하지만, 애니는 이미 사랑에 빠진 눈을 가졌다.

그들의 어설픈 신혼 일기는 한순간에 부서진다. 이반의 결혼을 알게 된 부모가 험상궂은 부하들을 파견한 것이다. 그들은 순식간에 신혼집을 헤집었고, 무려 영어, 러시아어, 아르메니아어를 섞어가며 애니를 '창녀'라고 깎아내린다. 저런 창녀가 감히 사랑을 할 리가 없다며 둘의 결혼을 '꽃뱀의 술수', '철없는 감정'이라고 비꼰다.

 영화 <아노라> 스틸컷
영화 <아노라> 스틸컷유니버설픽처스

부하들은 애니의 해명에 매번 "닥치라"고 하고, 말할 권리가 없다며 결혼을 무효화하는 과정에서 그를 내쫓는다. 이반의 부모 역시 '창녀'라고 조롱하며, 고소하겠다는 애니의 말에 "네 인생을 망치게 해주겠다"고 응수한다. 부하들과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던 이반은 궁지에 몰리자, 애니를 향해 "바보 같다"며 둘의 결혼을 하룻밤 실수처럼 취급한다.

극 중에서 애니는 무수한 성관계를 갖지만, 결코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를 무식한 '창녀' 취급하며 마치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사물, 혹은 짐승처럼 대한다. 애니 역시 그러한 관계에 익숙해져 가명을 고집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차분한 대화 대신 분노를 택한다.

유일하게 자신을 아노라라고 부르며 "결혼을 축하한다"고 말한 이고르와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그러했다. 자신을 위로하는 이고르를 향해 애니는 갑작스럽게 옷을 벗으며 성관계를 가지려 한다. 억지로 몸을 맞대자 이고르는 그를 막아선다. 그리고 껴안았다. 성 구매자와 판매자, '고객'과 '창녀'의 관계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몸을 섞는 순간. 애니는 다시 아노라로 돌아와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문란한 여성'을 비웃을 자격이 없다

 영화 <아노라> 스틸컷
영화 <아노라> 스틸컷유니버설픽처스

영화는 성 노동자의 곳곳을 둘러본다. 클럽에서 여러 남자와 어울리던 아노라는 아침이 돼서야 퇴근한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헤드셋을 끼고, 피곤한 표정으로 지하철에 사실상 실려 가는 모습은 여느 회사원과 다를 바 없다. 퇴근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상에서 5초 남짓한 장면이었지만, 관객에게 전부를 깨닫게 한다. 그도 우리처럼 지나친 피로, 지겨운 권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사실을.

이고르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아노라를 비웃지만, 영화는 그들에게 그러할 자격이 없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노라를 비웃던 부하들은 걸핏하면 화를 내고 들끓는 충동에 휘말리는 이들이고, 이반은 사랑하는 여자를 내팽개치고 도망갈 만큼 비겁하며, 그의 부모는 장성한 아들 하나 통제할 줄 모른다.

이들 사이에서 가장 어른스럽고, 책임감이 강한 인물은 아노라다. 그는 노동자로서 열심히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을 줄 알며, 그의 가족에게 "잘 부탁한다"고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다. 하지만 단지 몸을 판매한다는 이유로 그의 인격과 능력은 무시당하며 삽시간에 '걸레'라는 납작한 인물상으로 눌린다.

성 산업과 성 노동자를 정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감독 션 베이커 또한 무엇이라 단언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관객 앞에 세웠다. 때로 우리는 판단하기 바빠서 제대로 보지 않는다. 성 산업에 뒤엉킨 윤리, 인권, 자본을 따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그 안에 살아가는 이들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노라>는 주인공 아노라가 139분 동안 자기를 소개하는 영화다. 나는 문장 마디마다 'fuc****'을 빼놓지 않는 23살이라고. 시끄러운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집에 산다고. 흩날리는 눈보라를 말없이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아노라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아노라 션베이커 미키매디슨 ANORA 성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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