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 현장의 이미랑 감독과 임세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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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면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소설 맨 뒤 작가의 말을 보고 이 영화가 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늘 실패로 끝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는 마음. 다들 먹고살기 바빠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지 않나.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 레인이 찾아와 연인인 딸을 '그린'이라고 하자 엄마는 '우리 딸은 그린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자신들이 따로 지은 이름을 쓰면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비유로 이해했다. 엄마도 엄마라고만 불리고 이름은 안 나온 것 같다.
"맞다. 소설에 있던 아이디어다. 엄마도 엄마라고만 불리는데 그 의도가 맘에 들어 영화에서도 그렇게 했다. 세상의 많은 엄마가 본인의 이름을 잃고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산다. 다만 영화에서 엄마가 직장을 구하러 갈 때 컴퓨터 모니터에 본명이 나온다. 보일 뿐 호명되진 않는다.
엄마를 엄마로 둔 이유는 흔한 보통명사 안에 관객들이 자신의 엄마를 투영할 수 있도록, 고유명사로 바꿀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원작에서도 그린과 레인의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엄마 성격상 그린의 본명을 잘 지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린과 레인은 자신들이 어디선가 지은 듯한 이름을 부르는데 그게 멋있었다."
- 원작과 엔딩이 다르다. 횡단보도에서 동성 연인처럼 보이는 이들을 보고 엄마가 웃는 모습으로 끝난다. 새롭게 결말을 구성한 이유가 있나?
"원작은 장례식장에서 끝이 난다. 처음엔 장례식장에서 끝나도 엄마의 미세한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니터링을 받아보니 엄마의 변화가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아 횡단보도 장면을 보충 촬영해서 붙였다.
그 횡단보도 장면에서 현수막이 등장하는데, 아직 이걸 발견한 관객이 없다(웃음). 소성욱·김용민씨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에서 이기면서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를 많이 보냈다. 그래서 우리도 관련 내용의 현수막을 만들어 뒤에 걸어놨다."
(2020년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김용민씨의 배우자 소성욱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동성 부부'임을 밝혔고, 성별이 기재된 서류도 제출했다. 하지만 관련 기사가 올라오자 돌연 8개월 만에 등록을 취소했다. 이에 소를 제기해 2022년 1월 1심 패소, 2023년 2심 승소, 2024년 7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 지난 21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는 등 한국 사회에서 '정상 가족'에 대한 개념에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21대 국회 때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에 천막을 설치했는데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참여해서 같이 공부를 했다. 그전까지 나도 '정상가족'에 포함된 사람이었는데 집회에 가서 공부를 많이 했다. 어느 관객과의 대화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안가족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대안'이라는 말을 들었다. 가족의 대안이라고 할 만한 게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재희와 레인이 집에 들어오고 장례식장에서 그린과 레인의 동료들이 재희의 마지막을 지켜주는데 이는 가족의 대안으로서 '공동체'다.
소설이 2017년에 나오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영화는 2024년에 개봉했다. 그 사이에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고 소성욱·김용민 부부가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제작사 대표랑 '우리 영화가 올드해지는 거 아닌가'란 걱정도 했다(웃음). '정상가족'에 대한 내 감각이 제도권 안의 분위기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가 소수이고 다수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괴리감도 느낀다."
"예산 삭감으로 영화인 씨 말리려는 건지... 마음 복잡하다"
- 상영관을 찾기 쉽지 않았다. 서울은 그나마 몇 군데 있지만 그 외 지역에선 정말 어렵다. 독립영화 현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3대 브랜드) 3450개의 스크린 극장이 있는데 1% 스크린도 배정받지 못한다. 독립예술영화관에서도 해외 예술영화를 많이 상영한다. 독립예술영화관 입장에서는 수익을 내서 유지해야 하니 이러한 불균형이 반복된다. <딸에 대하여>도 처음에 상영관을 받았는데 오전 7시 20분, 이런 시간이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이다.
최근 나온 '딸에 대하여', '장손', '해야 할 일' '그녀에게' 등 4편의 독립영화는 결코 만듦새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다. '장손'은 스펙터클에 놀랄 거다. 그래서 이 네 작품이 그나마 극장에 길게 걸릴 수 있도록 나름대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영화 제작도 어려워지고, 창작해도 보여줄 기회가 적다. 영화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지원을 받으면 연말 안에 개봉을 해야 해서 하반기에 개봉을 기다리는 독립영화가 많다. 게다가 한국 영화 자체도 어렵다. 매체 환경이 변해 극장을 찾지 않는 시대라서."
- 최근 서울독립영화제 예산 삭감으로 영화인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서명을 받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예산 삭감으로 영화인들 씨를 말리려는 건지, 마음이 복잡하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관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관객을 만나려면 작은 영화들의 경우 영화제가 필요하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졸업 작품을 찍어야 하니까 매년 1000편 가까운 작품이 쏟아진다. 이 작품들이 영화제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여기서 호응이 좋으면 수상을 하고 개봉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같은 처지에서 같은 고민하는 동료들을 영화제에서 만난다.
극장에 가면 상업영화가 주로 있지 않나. 예산이 적은 많은 영화들이 개봉조차 하지 못한다. 독립영화를 보러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도 있고. 영화제는 관객이나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소통 창구다. 영화제조차 없으면 영화의 세상은 더 좁아질 것이다.
글 장슬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박상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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