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에서의 20일"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마리우폴은 유서 깊은 전략 요충지다.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거대한 '동부전선', 독일과 소련의 전쟁에서 이 지명은 끊임없이 발견된다. 그만큼 반드시 차지해야 할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닌 곳이란 의미이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 즉시 마리우폴은 최전선이 되었다. 러시아 점령지역 사이에 자리하고, 흑해를 통제하기 위해 핵심 교통로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세계의 관심이 마리우폴 포위전에 쏠렸지만, 위험이 너무 크다 보니 외신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 남은 곳이 있긴 했다. AP통신 우크라이나 현지 인력 취재팀이다. 이들은 떠날 수 없었다. 바로 자신들 나라 이야기이고,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쟁상황에서 세계 여론을 움직일 '마지막 '동아줄'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이들이 마리우폴에 남은 유일한 미디어가 된다.
시가전 중반까지 20일 동안 취재팀은 격전 한복판을 전전한다. 러시아군은 압도적 전력으로 도시로 밀고 들어온다. 매일 전선이 이동하며 적군은 중심부로 진입 중이다. 이쯤 되면 주인공들이 절망적인 상황에도 영웅적으로 맞서는 우크라이나군의 애국심과 용전분투, 그리고 러시아의 최첨단 무기들을 조명하리라 기대하는 이들이 수두룩할 테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전장의 용맹을 보여주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너무 위험한 것도 문제일 테지만, 그들의 카메라가 조명하고자 한 건 전쟁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비극성'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마리우폴로 달려간 취재팀이 맞닥뜨린 건 우리가 할리우드 전쟁 블록버스터에서 보던 장대함이 아닌, 현세에 강림한 지옥과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인간 군상의 거대한 아수라장 연속에 불과했던 것이다.
극적 구성이나 서사를 운운하는 건 <마리우폴에서의 20일>에선 배부른 투정과 사치에 불과했다. 취재팀은 자신들의 안전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 매일 그들은 장소를 옮겨가며 다양한 전장의 참상을 기록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에 겹다. 물론 이들은 유일한 외신 취재팀으로 날로 악화하는 전쟁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 당국의 각별한 보호를 받았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지원과 현지의 조력에도 불구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은 하루하루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이제는 과연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카메라에 담긴 전쟁의 참상, 그리고 오래된 취재윤리 갈등의 최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