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선의> 스틸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싸이더스
김현정 감독의 작품세계는 21세기 한국문학,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자의식 반영이 극한에 이른 경향성과 맞닿은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의 대표작들은 영남이라는 보수적 풍토에 자리한 가부장제 가족의 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꿈을 펼치기엔 너무나 취약한 지방 도시의 주변부 입지로 인한 질곡, 기성세대에 밀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변방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다양한 경로로 표출해 왔었다.
연인과 헤어지고 시장 변화에 밀려나 폐업을 앞둔 비디오 가게 여사장의 하루('은하비디오'), 늘 예쁜 언니에게 떠밀려 2군 신세인 둘째 딸의 설움 ('나만 없는 집'), 영화의 꿈을 꾸며 서울로 왕복하며 시나리오 수업을 듣는 소심한 작가 지망생 ('입문반'), 갑자기 찾아온 엄마의 부재로 권위적인 아빠와 직면해야 하는 취업준비생 ('흐르다')까지 감독을 상징해온 자전적 경험담의 영상화는 한 단계를 마쳤다. 그렇다면 이제 감독의 창고에 남은 이야기가 과연 있을까 하고 염려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과연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다.
김현정 감독은 이후 극과 다큐멘터리, 실험영화를 넘나드는 형식 실험에 돌입한다. <유령극>과 <서신교환>이 그 과도기상의 작업에 속하는 것들이다. 감독의 도전은 아직 온전히 확립되지 못했지만, 전환기의 작품들로도 주목과 평가를 획득하는 중이다. 그 가운데 본인의 체험담을 넘어서는 보편적 주제와 서사를 풀어낼 수 있을지 도전이 <최소한의 선의>를 통해 시도된 셈이다.
감독은 본인이 직접 체험한 바 없는 임신과 결혼, 그리고 교육자의 역할에 대한 성찰로 그런 전환점의 작업을 전개한다. 자전적 경험을 넘어서는 도전은, 보편적인 현재 여성들의 삶과 그들을 짓누르는 출산을 통한 인구 재생산의 멍에, 그리고 미혼-미성년 여성의 임신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왜곡된 사회적 인식의 한계를 정면으로 붙든다. 특히 후반부 학내 구성원 회의 장면은 지금껏 감독의 영화들에선 볼 수 없었던 공개적 논쟁 제기의 불판을 열어젖힌다.
그런 파격적인 시도가 여태껏 김현정 감독의 작품세계와 다소 이질감을 불러오지만, 진화를 향한 경로로 이해한다면, 다소 거칠다거나 메시지 전달에 치중하는 면모 또한 다음을 기약하게 해줄 법하다. 깨질 것만 같은 예민한 감성과 참고 견디는 인내의 회복 탄력성이 밀고 당기던 영화 속 세계관의 비약적 확장을 위해선 일정한 시행착오는 필수 통과의례가 아닐까.
두 여성이 이룬 공감과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