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벌거벗은 한국사> 중 한 장면
tvN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는 20세기 들어 대중문학의 핵심 소재로 떠올랐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이 소재가 비중 있게 다뤄진 이후의 일이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이 책에서는 두 개의 낙랑을 구별코자, 낙랑국은 남낙랑으로 표기하고 한나라 낙랑군은 북낙랑으로 표기한다"라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나오는 낙랑왕과 신라본기에 나오는 낙랑국은 다 남낙랑을 가리킨다"고 한 뒤 "기존 학자들은 요동의 북낙랑은 생각지도 않고 남낙랑을 낙랑군이라고 불렀다"고 지적한다.
신채호는 자명고의 나라인 남낙랑의 건국을 마한·진한·변한의 역사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마한이 월지국으로 천도한 뒤, 옛 도읍 평양에서는 최씨가 등장해 주변 25개국을 복속시키고 하나의 대국을 이루었다"라며 이것이 "역사 기록에 나오는 낙랑국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만남도 비중 있게 다뤘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를 <조선일보>에 연재한 건 1931년이다. 이로부터 4년 뒤에 이 콘텐츠를 소재로 학자·교육자·번역가·기자·출판인·배우·소설가·영화감독·영화제작자·만담가 등을 겸한 윤백남이 <정열의 낙랑공주>라는 역사소설을 내놓았다. 2011년에 <대중서사연구> 제26호에 실린 유인혁의 논문 '호동왕자 서사의 근대적 재현 양상 연구'는 이렇게 설명한다.
"호동왕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문학적인 형식을 취하기 시작한 것은 1935년의 일이다. 이 해 윤백남은 <월간야담>에 <정열의 낙랑공주>와 <순정의 호동왕자> 두 편의 야담을 발표했다. 차례로 1942년에 이태준이 <매일신보>에 <왕자호동>을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1948년에는 유치진이 <자명고>를 출간했다."
윤백남은 다종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그렇지만 일관성은 있었다. 2014년에 <어문론총> 제61호에 실린 정혜영 대구대 기초교육원 강사의 논문 '식민지 역사소설의 운명 – 식민지 시기 발표된 윤백남의 역사소설을 중심으로'는 "너무 여러 직종에 관여하였다는 점으로 인해서 윤백남은 누구의 기억에도 깊게 남아 있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러나 윤백남을 따라다니는 이 많은 수식어들은 의외로 '대중'이라는 하나의 용어와 연결될 때 질서정연하고 일관된 의미로 정리된다"고 평한다. 대중문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응시하면서 여러 직업을 거쳤으므로 일제강점기 대중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인물이 윤백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열의 낙랑공주
윤백남의 <정열의 낙랑공주>는 원전인 <삼국사기>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원전의 빈 곳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운 작품이다. 역사서를 많이 접하는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라 평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호동이 옥저 지방을 여행하다가 낙랑국 마지막 군주인 최리를 우연히 만났다고 말한다. 때마침 순행 중이던 낙랑왕 최리가 호동의 출중한 외모에 반해 궁궐로 데려가 자기 딸과 결혼시켰다고 <삼국사기>는 말한다.
<정열의 낙랑공주>는 호동이 우연을 가장해 최리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이 만남의 계기가 됐다고 스토리를 전개한다. 최리의 수레를 끄는 말의 뒷다리에 일부러 돌을 맞춰 말을 폭주하게 한 뒤 자신의 말을 타고 달려가 최리의 말을 진정시켰다는 것이다.
<정열의 낙랑공주>는 호동이 낙랑국 공주와 혼인하는 과정도 <삼국사기>와 다르게 상상한다. 낙랑국 대궐에 들어간 뒤 틈만 나면 자명고 위치를 수색하던 호동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녀와 공주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 운명적인 사랑의 시작이었다고 상상한다.
공주가 자기를 짝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호동은 그를 자명고 찾는 일에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공주를 농락하자"라고 그는 결심한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나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시녀는 망보는 역할을 맡게 됐다는 것이 <정열의 낙랑공주>의 이야기다.
<삼국사기>는 호동이 고구려로 돌아간 뒤 공주에게 밀서를 보내 자명고를 찢어버리라고 주문하자 공주가 그대로 시행한 뒤 고구려 군대가 침입했다고 설명한다. <정열의 낙랑공주>는 일시 귀국한 호동이 공주에게 밀서를 보내기까지의 과정을 뜸 들이며 설명한다.
이 소설은 공주는 계속 편지를 보내고 호동은 이를 무시하던 상황이 이어지다가, 호동이 회심의 답장을 보냈다고 말한다. '자명고라는 비밀 무기 때문에 고구려와 낙랑은 화친할 수 없으며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호동의 편지가 공주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말한다.
윤백남의 소설도 재미있지만, <삼국사기> 기록 자체도 흥미롭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실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하나의 소설이다. 실존 인물인 두 사람이 이 극에 어울리는 최고의 주연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년이>의 윤정년은 역할을 분석하면서 이 작품을 군졸 중심으로 재해석했다. 한국전쟁 직후의 인물인 그는 전란에 동원되는 군졸의 입장에서 자명고 이야기를 해석하고 즉흥연기까지 감행함으로써 전혀 엉뚱한 작품으로 바꿔놓았다. 이 때문에 드라마 속 그의 운명은 새로운 단계에 놓이게 됐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