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노턴 쇼> 스틸컷
BBC1
셰릴은 자신의 기습 질문에 그나마 나은 답변을 한 '남자 3번' 즉 로드니를 프로그램의 승자로 선언한다. 하지만 방송이 끝나고 난 뒤, 무언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셰릴은 로드니에게 자신의 가짜 전화번호를 주고 그와의 연을 끊으려 한다. 로드니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인적이 드문 주차장에서 셰릴을 쫓아가 죽여버리려 한다.
갑자기 튀어나온 방송국 퇴근 인파 덕분에 간신히 살아난 셰릴은 배우로서의 꿈도 포기하고 아예 이사를 가 버리는 등 자신의 안전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상대'가 아니라 '가장 자신에게 상처입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골랐는데도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단지 '옛날 일이다'라고 치부해 넘길 수 있을까? <오늘의 여자 주인공>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여성의 안전에 관한 본작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해 보인다.
일례로, 배우 시얼샤 로넌은 지난 10월 25일, BBC의 토크쇼인 <그레이엄 노턴 쇼>에 폴 매스칼 등의 남자 배우들과 함께 등판한다.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는 위급 상황에 묵직한 핸드폰을 호신용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 나오자, 진행자를 비롯한 남자 배우들은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해당 발언을 조롱하기 시작한다.
이때 시얼샤 로넌이 "하지만 그것(호신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걱정)이야말로 여자들이 항상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며 지적한다. 이 단순하고도 강렬한 장면은 순식간에 바이를(viral) 화 되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수많은 네티즌의 공감을 끌어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소위 '점잖은' 남성들조차도 여성의 안위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여성의 걱정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게 된다. 그렇게 여성 안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예민하거나 '히스테릭한' 여자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위협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아닌 근본적 위계 격차에서 발생한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여전하고 '승진을 위해 몸을 요구한' 남자가 비판받는 대신 '승진하기 위해 몸을 댄' 여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상, <오늘의 여자 주인공>과 <그레이엄 노턴 쇼>에서 보인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아나 켄드릭은 본인의 감독 데뷔작을 통해 당당하게 선언하는 듯하다. 여성의 안전은 '요즘은 치안 좋다'라는 말로 일축할 수 없다고, 근본적인 성평등을 이루지 못하면 제2, 제3의 '로드니'는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오늘의 여자 주인공>은 1시간 35분의 담백한 러닝타임 안에 서스펜스와 사회적 메시지를 응축시킨 수작임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감독' 애나 켄드릭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본작의 성공이 더욱 많은 '사실적 호러' 영화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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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