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정년이>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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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변화 중 하나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윤정년과 박종국의 대화가 있은 지 몇 년 뒤부터 대중의 생활 속으로 파고든 TV는 처음에는 개인과 마을공동체의 친밀성을 높여줬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개인과 가족의 친밀성을 높여주면서 개인과 마을공동체의 친밀성을 떨어트리는 기능을 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개인과 가족의 친밀성까지 떨어트리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흐름이 2018년에 <커뮤니케이션 이론> 제14권 제4호에 실린 부산대 채백 교수 및 최창식·강승화·허윤철의 공동논문에 이렇게 정리돼 있다.
"196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TV는 마을의 이웃들을 불러모으며 이웃 공동체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TV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각 가정의 안방을 차지한 TV는 가족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다.
가정용 TV의 확산은 가족주의의 강화에 기여하였지만, 동시에 이웃과의 교류를 감소시켜 마을공동체 약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이는 산업화 과정에서 이농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유동적 사회화 추세와 맞물리며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로는 TV 복수 소유가 점차 확대되고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 확대로 TV의 시청도 개인화된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65년에 가구당 TV 보급률은 0.6%였다. 1000가구 중에서 여섯 집에만 TV가 있었으므로, 이 여섯 집은 집주인 인심이 박하지 않다면 동네 극장이 되기 쉬웠다. 1975년에는 그 비율이 30.3%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의 집에 가서 TV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TV 보급이 확산돼, 웬만하면 남의 집 신세를 질 필요가 없게 됐다. 보급율이 가구당 112%가 된 것은 1995년이다. TV 드라마를 구경하기 위해 더 이상 다른 집이나 주인집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은 1990년대다.
이처럼 대중을 TV 수상기 앞으로 끌어당긴 힘은 무엇보다 재미다. 뉴스를 보기 위해 남의 집에 가는 사람보다는 <전설의 고향> 같은 드라마를 보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TV가 주는 정보보다는 재미가 대중을 더 많이 끌어당겼다고 할 수 있다.
그 재미를 찾기 위해 대중은 마을이나 이웃과 '전략적'으로 가까워지기도 하고 가족과 친밀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남과 함께 TV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TV가 많아지는 동시에 그 TV가 스마트폰 속으로까지 들어가게 되면서, 이제는 자기 방이든 교통수단이든 식당이든 어디서든지 나홀로 재미를 추구할 수 있게 됐다.
TV를 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윤정년의 시대에는 이 물건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줄게 될지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윤정년처럼 여성국극의 인기를 좇아 국극배우로 데뷔했던 예술인들이 머지않은 196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이 당시로는 TV가 주는 재미의 위력을 가늠하기 힘들었던 데도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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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