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인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단순히 관계의 의미 속에서 던져진 것처럼 보이는 이 물음은 두 사람이 떠난 산책에서, 산책로의 벤치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가방 하나가 등장하며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점유를 이탈한 것처럼 보이는 가방에 민정이 관심을 보이면서부터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가방이 예뻐 보이는 그녀는 한 바퀴 돌고 난 뒤에도 그대로라면 자신이 가지겠다고 선언하고 결과적으로 가방을 갖는다. 여기에는 물성을 가진 대상을 처음 가지게 되는 지점에 대한 물음이 있다. 각자의 뜻을 확인하고 조율할 수 있는 관계의 시작과 달리, 확언할 수 없는 대상을 처음 갖게 되는 일. 이후 등장하는 장면 하나를 더 설명한 뒤에 이야기를 이어가야겠다. 회린(정회린 분)이 민정과 소령 사이로 개입하는 신이다.
이전까지의 장면에서 회린은 민정과 소령이 함께 등장하는 신 사이를 맴돌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녀가 대뜸 등장해서 민정이 주운 가방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민정은 그가 진짜 가방의 주인이라면 돌려줄 용의가 차고 넘치지만, 소령을 만난 장소가 가방이 놓여 있던 서울의 산책로가 아닌 강원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회린은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할 뜻도 방법도 없어 보인다. 민정에게는 돌려줄 수도 돌려주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가 생긴 셈이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확인할 수 없는 대상을 처음 갖게 되는 일'의 의미는 여기에서 조금 더 또렷해진다. 물건은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설명할 수 없고 민정과 회린은 가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장하거나 알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분명 가방을 가진 사람이 있고, 가방이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가방이 존재하지만 이 셋의 명확한 관계를 설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조희영 감독이 그간 그려왔던 틀 속에 다시 배치해 보자. 관계와 기억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온 세 사람의 관계에는 단절되고 유지되는, 다시 시작되는 관계의 모든 측면이 그려지고 있고, 선명한 기억과 흐릿한 기억,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이 다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04.
"아까는 내가 그러고 싶었나 보지."
이 작품은 감독이 연출한 세 편의 단편이 가진 마지막 온점처럼 느껴진다. 시기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놓여있기 때문은 아니다. 작품 속 소재들이 가진 연결성이 그런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게끔 만든다. 민정과 소령이 강원도로 향하는 이유는 점집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고 싶거나 어딘가 기대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점을 보곤 한다.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막 끊어져 버린 애정했던 존재와의 관계 이후 방향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주운 가방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는 민정의 대사는 가방과 주인의 관계에 삶과 삶 주체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옮겨다 놓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회린과 연결된 에피소드 이후 결국 점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두 사람은 이제 어딘가에 기대는 것이 아닌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태도를 가지고자 한다. 두 사람 가운데 조금 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민정은 가방의 처분도 회린을 대하는 모습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지향하고자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조희영 감독은 이 작품 이전의 두 단편 <기억 아래로의 기억>과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를 통해 기억과 관계성을 들여다보았다. 중요한 것은 두 작품 모두에서, 어쩌면 이번 영화 <주인들>의 초반부 장면들을 통해서도 그의 작품 속에서 기억이라는 것은 관계성을 제한하고 얽매는 장치로 이용되어 왔다. 그것을 부수고 나아가게 하는 것은 오히려 기억과 일치하는 관계가 아닌, 기억을 벗어난 관계 혹은 기억과는 다른 관계에 해당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놓여 있는 민정의 행동들, 회린이 진짜 주인인지 알 수 없는데도 가방을 돌려주고,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케이블카 티켓을 끊어주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무작정 가방을 돌려달라던 회린의 모습 또한 어쩌면 같을지 모른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기억과 관계.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내일에 대한 가능성과 새로운 관계로 인한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