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
2011년, 어느 프랜차이즈 기업과 창업 현장 답사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추천 받은 상가 좁은 골목 맞은편엔 이미 같은 업종의 다른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있었다. 최근 개업한 듯 세련된 디자인의 선명한 간판과 예쁜 인테리어의 가게 안에서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가 어린 알바와 함께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왜 하필 여기냐'는 내 질문에 영업 사원은 '보는 것처럼 손님이 많은, 검증된 상권'이라 답했다. 이에 나는 '저 앞집 노부부의 손님을 빼앗으란 말인가?' 하고 되물었다.
내 말에 그 영업 사원은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점잖지만, 훈계하듯 단호하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장님, 장사는 경쟁입니다. 그런 나약한 마음으로 장사하면 망해요. 저 가게는 이웃이 아니고 경쟁자예요."
2021년, 과도한 업무에 치인 게임사 직원의 자살, 돌연사가 기사화되며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3년이 지난 현재는 적자생존이라는 비인간적 경쟁에 내몰린 택배기사, 배달 라이더, 물류 센터 노동자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기사화되며 그 '경종'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졌다.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다
'흑백요리사'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큰 흥행을 거둔 예능 방송이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일부는 서두와 같이 피로감과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시청자뿐 아니라 해당 예능의 주역인 미슐랭 스타 요리사들에게서도 나타났다. '흑백요리사'의 인기를 계기로 만들어진 어느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미슐랭 등급을 받은 요리사 상당수들이 등급 유지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일부는 등급 유지를 위해 주방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자신의 비인간적 모습에 회의를 느끼다 어렵게 획득한 미슐랭 스타를 반납하고 폐업을 선택하는 사례도 있었다.
독일에서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킨 책 <피로사회>(한병철 작가)에서 작가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는 데 현시대는 '긍정성 과잉'에 따른 질병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긍정성 과잉'이란 '~할 수 있다'라는 사회적 정서를 뜻한다. 작가는 이런 분위기가 자기를 착취하게 만들고 이는 현대 사회의 주요 병리 현상인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위기가 위험한 건 자기착취가 마치 자유의지인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한 요즘 젊은 세대 유행어가 바로 '누칼협'이다. 이 낯선 단어를 풀면 '누가 칼들고 협박했어'라는 과격한 문장이 된다.
타인의 명백한 압박 또는 강요 보다 더 과격한 이 사회적 압박과 강요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넘어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을 혹사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책 <피로사회>의 아래 문장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중략) 우울증은 성과 주체가 더는 할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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