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룸 넥스트 도어>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세상에 태어나는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사라지는 일은 선택할 수 있다. 영화는 죽음을 관통하는 여정을 따라 어느 때보다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살고 싶은 욕망이 커지는데 반해 마사는 놀라울 정도로 의욕을 잃어버린다. 대신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떠나는 길이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마사는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시체를 보아왔다. 죽음이 무뎌진 전쟁터에서 두려움을 떨쳐 낼 최고의 방법이 육체적 쾌락과 충만한 사랑이었다는 수도사의 말에 감동하고야 만다. 그 사연을 기사화할 수 없었지만 늘 마음속에 품으며 살아왔다. 긴 시간이 흘러 삶이 꺼져가고 있을 때 다시 떠올랐다. 끝내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고통 속에 몸 부리며 죽음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표명한다. 암이 지배하는 전쟁터에서 이기겠다고 선언한다. 결과는 완치가 아닌 세상과의 작별이다. 죽음을 손에 쥐고 직접 핸들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고통 속에서 오래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의식이 있을 때 사라지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다. 아마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바라는 마지막 모습을 영화로 풀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유럽 몇 나라에서만 가능한 안락사, 존엄사, 조력 살인을 중심에 두고 담담하게 전개된다.
죽음의 여러 모습이 교차된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마지막에는 요양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한국의 어느 노인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간의 죽음도 중요하지만 데이미언(존 터투로)의 언어로 전달되는 지구의 종말도 의미심장하다. 지구를 의인화해 생각해 보면 인간은 암 덩어리에 불과한 존재다. 그는 신자유주의와 극우세력의 등장이 기후변화를 부추긴다며 강력하게 항의한다. 지구의 죽음도 멀지 않은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생각이 많아진다.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더블린의 사람들'에수록된 '죽은 사람들(The Dead)'을 읊조리는 마사의 목소리는 여운을 남긴다. 특히 마사의 딸 미쉘의 등장으로 죽음은 끝이 아님을 암시한다. 10대 때 낳은 딸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친구를 대신해 잉그리드는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다. 이로써 완벽한 대칭, 수미상관으로 마무리된다. 올해 가장 아름다운 엔딩으로 손꼽을 찬란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날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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