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가리"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주인공들은 소소한 갈등과 반목으로 제법 심각하게 충돌하며 온갖 슬랩스틱을 만들어낸다. 대복은 자식 농사도, 이혼 처리도, 미수금도 뭐 하나 되는 게 없다. 슈퍼 운영은 벼랑에 몰렸고 기가 센 딸은 아빠를 쥐락펴락 술주정이나 부리고, 아들은 몽상만 쫓으며 말은 지지리도 듣지 않는다. 차라리 확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일 테다. 아내와는 변호사를 통해서만 법적으로 처리되는 지경이다. 귀책 사유는 대복에게 있다.
홍민은 아버지에게 반항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한 것처럼 대복이 원창에게 모욕을 당하자 길길이 날뛰며 위험한 행동을 벌인다. 일은 오히려 더 커지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위해 사고를 치는 게 밉지만 않은 눈치다. 건장한 체구의 (과거 격투기에 종사한) 담뱃값 300만 원 미수금의 주인공 원창 역시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심성은 한없이 여리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덩치는 위협적이지만, '착하게 살자!'라고 이마에 쓰기라도 한 듯 원창은 입으로만 떠들 뿐이다.
<빚가리>의 대표적 실험요소라면, 인물의 영화 속 행동과 심리적 상상이 컬러vs흑백으로 대비되는 지점이다. 셋은 갈등을 거듭하며 일을 키우지만, 그래도 양보하고 사과하면 일이 풀릴 수 있을까 늘 망설인다. 그 고뇌의 찰나가 거친 흑백 톤으로 각인된다.
따지고 보면 지난 세대에선 말도 안되는 무법천지 같은 악습도 많긴 했지만, 툭탁거리다 이내 화해하곤 하는 자율적인 갈등 해소의 순간도 적지 않았다. 동네 대소사는 아날로그 공론장이라 할 몇몇 공간에서 논의되고 동네 어른들의 훈수로 조정되는 게 그리 드물지 않았다. 가족은 으르렁대며 갈등하다가도 외부의 위협 앞에선 함께 똘똘 뭉치는 공동체였고, 동네 선후배라는 건 폐쇄된 작은 사회의 폐단을 떠올리는 이들에겐 공포 그 자체일 테지만, 의외로 복잡한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하는 유용성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빚가리>에는 그런 지난 시대의 향수, 도시공동체라 할 작은 동네의 자율성이 긍정적 면모 위주로 재현되는 광경이 가득하다.
영화는 그렇게 소소한 가족의 정, 사라져간 동네와 골목의 정취를 그저 향수에 기울어지지 않고 현재에 되살리고자 한다. 지역사회와 함께 한 걸음만 나아가려는 태도가 깊기에 가능한 방법론일 테다. 사회적 병폐를 고발하거나 전위적인 형식 실험에 치우치는 대신, 고봉수 감독과 영화 동료들은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제작과정부터 극장 상영까지 함께 웃고 떠들며 즐겁게 전 과정을 이어가길 택했다.
그런 작가의 의도와 방식을 이해한다면, <빚가리>는 물론 '고봉수 사단'이라 불리는 영화집단의 작업을 좀 더 근본적으로 조망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의외로 영화는 그저 가볍지만은 않은, '빚가리'의 근본 의미에 천착하는 면모도 종종 툭 하고 선보인다. 가족의 숙명과 세대 간 원치 않은 계승 같은 요소를 추출하는 것은 관객에게 주어진 여백의 몫일 테다.
<작품정보>
빚가리 DEBT
2023 한국 코미디
2024.10.16. 개봉 75분 15세 관람가
감독 고봉수
주연 문용일(홍민 역), 고성완(대복 역), 승형배(원창 역)
출연 장동우(돌뼈나무 대표 역), 시혜지(수민 역), 김요섭(원창수하 역),
주성빈(돌뼈나무1 역), 이정주(돌뼈나무2 역)
PD 시혜지
각본/편집 고봉수
제작 시네마다방
배급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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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