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우물> 캡처 장면안순애와 동료들
안순애
초대 지부장에 이어 다음 조합장도 여자가 선출됐다. 당연한 결과였다. 근로기준법, 노동삼권 등 대단한 법 지식 같은 것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무식한 년들'이라고 우리를 비웃으며 절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했던 회사를 보며 우린 웃을 수 있었다. 걸음걸이도 당당해졌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초대 주길자에 이어 2대 이영숙 지부장이 당선되자, 회사는 거의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하던 것들이, 주는 대로 받았던 것들이, 임금 인상 테이블에 앉아있으니 회사는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회사는 노골적으로 우리를 탄압했다. 남자들은 뒤에서 조정해 반조직 행위를 하게 했고, 여자들을 우습게 보는 남자들은 악랄하게 우리에게 함부로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회사는 역대 어용이었던 한국노총, 중앙정보부 대공분실과 공모하여 우리를 탄압했다.
그때 우리는 나체 시위를 했다. 1976년 내 나이 열여덟이었다. 우리가 반정부 투쟁을 하려고 옷을 벗었을까. 노동운동의 대단한 이념으로 무장했다 한들, 이런 처절한 투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경찰은 지부장과 총무를 무조건 연행하려 했고, 우리는 집행부가 잡혀가면 노동조합에 위기가 올 것임을 직감했다. 그걸 저지하려 노동조합에 몰려들었던 것이다.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마주하고, 저들은 경찰이고 그래도 우린 여자이니까 맨몸에 손대지 않을 거라는 절박함에 옷을 벗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데 여자를 사람으로 보겠는가. 연행해 가는 버스 밑에 울며불며 드러누워 저지해보려 했으나, 맨몸이 된 지부장, 총무, 대의원 언니들을 태운 경찰 버스는 뒷문으로 나갔다. 널브러져 있는 옷과 신발 등을 주섬주섬 모아 사무실에 놓고 경찰서로 몰려가 석방을 외쳤다. 그들 스스로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언니들은 밤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밤새 마이크를 잡았던 경찰의 협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니년들은 빨갱이다.
잡혀가서 호적에 빨간 줄 그어지면 시집도 못 간다."
똥물 퍼부은 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