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X언니>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삶이 짓눌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동안 잘 참아왔던 시간도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때의 답답함은 굳이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현재의 문제나 상황과 부딪힐 때 더 거세게 날뛴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거나 원인이라고 여겨지는 대상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때. 그 탓을 주변으로 돌리고자 하면 끝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마음이 일단 발현하고 난 뒤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현재의 모양을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거나 지지할 힘이 부족한 자신이기 때문이다.
영화 <나의 X언니>에 등장하는 중학생 2학년 소희(김시은 분) 역시 그런 인물이다. 회사에 나가 일하는 엄마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는다. 빨래하는 일부터 밥상을 차려 먹는 것까지. 엄마가 자리를 비운 집이 필요로 하는 일은 모두 소희의 몫이다. 한 살 많은 언니 소진(김민진 분)은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떤 반응도 없이 소파에 앉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소진에게는 장애가 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렵다.
02.
"제가 언니 동생인 거 보배 언니한테 절대 말하지 마세요."
조현경 감독의 지난 작품들을 보면 중심이 되는 인물은 대체로 변하지 않는다. 대신 외부적 변화나 지금 구축되어 있는 관계나 세계에 발생한 작은 균열로 인해 강한 감정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첫 작품이었던 <첫 담배>(2020)에서는 비흡연자라는 이유로 승진의 기회를 빼앗긴 뒤 담배를 구입하게 되는 주현이 등장하고, 다음 작품인 <다박골 옥례씨>(2022)에서는 철거로 인해 30년을 넘게 살아온 공간을 떠나야 하는 옥례씨의 마음이 그려진다. 작품의 성격이나 주어진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양쪽 모두 외부적 영향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머무는 공간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잘 나아갔을 인물들이다.
이런 경향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소희에게 친언니 소진은 들키고 싶지 않은 존재다. 특히,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보배(여아현 분) 언니에게는 더더욱 알리고 싶지 않다. 소진과는 다르게 화장이나 패션에도 일가견이 있고 멋진 오빠들과도 어울리며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여서다. 실제로 영화는 어느 지점까지 소진을 집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그런 소희의 마음이 반영된 설정임이 분명하다(소희가 스스로 소진의 존재를 밝힌 뒤에야 그는 바깥에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이때부터다. 자신의 자랑과도 같은 보배 언니가 가장 감추고 싶은 존재였던 친언니 소진의 같은 반 옆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편한 진실, 소희의 현실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