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삼순 2024> 화면 갈무리
웨이브
처음 본 김삼순(김선아)은 조금 얄미웠다. 우리는 30살이라는 나이만 같을 뿐, 그녀는 나보다 훨 좋은 스펙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유학파에, 전문 기술을 가진 파티시에에, 심지어 가족들과 서울 부암동 자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이런 사람이 대체 결혼이 무슨 대수라고 그리 괴로워하는지. 내 입장에서 보면 배부른 소리 하는 삼순이가 답답해 보였다.
바꿔 생각해보면 그만큼 강산이 많이 변했다. 내가 '고작' 결혼이라고 말하는 이 인생 과제는 삼순이의 고급 스펙을 모두 깡그리 지워버릴 정도로 중대한 문제였다. 무언가 이룬 것도 없는데 결정해야 하는 나이 '서른'은 지금도 여전하다.
20년 전 그녀의 중대사가 결혼이었다면 내게는 '직장'이다. 신입으로서 받아주는 나이를 넘기 전에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 생각은 서른을 앞두고 급속도로 불어났다. 드라마 초반, 극중 현진헌(현빈)이 김삼순에게 계약연애를 하자고 할 때 그녀는 이렇게 거절한다. "난 초년운이 좋지 못해 사장님처럼 태평양을 유람선 타고 갈 처지가 안된다고. 그러니까 서른 셋까지는 내 짝을 만나 태평양을 건너고 싶다고요." 이 대사에서 난 '내 짝'이 '일자리'로 바뀌었을 뿐, 우리가 불안한 사회인이라는 점에선 똑같다. 우리는 여전히 삼순이다.
이런 면에서 삼순이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가장 큰 강점은 좋은 학벌도, 서울 자가 주택도, 유창한 불어도 아니다. '소통 능력'이다. 그녀는 제과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미세한 상황의 온도를 잘 읽는다. 삼순이의 언어는 의뭉스럽지 않다.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정확히 말한다.
삼순이를 좋아하면서 애처럼 틱틱거리는 현진헌에게 '네 마음을 제대로 직시하라'고 조언한다. 약혼녀가 있으면서 자꾸 자신에게 연락하는 전 남자친구 민현우에게도 '그럼 지금 약혼녀에게 전화를 걸어줄 테니 당장 승부를 보라'며 연락한다.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 거식증에 걸린 유희진(정려원)에게 '내가 미안해서 그렇다'며 죽을 끓여 주기도 한다.
한국어를 못 하는 헨리 킴도, 실어증에 걸린 어린 아이 미주도 모두 삼순이와는 말이 통한다. 자기 분에 이기지 못하고 불같이 역정을 내는 현진헌도, 그간의 사정을 말하지 않고 속내를 차갑게 감추는 유희진도 김삼순을 통해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워간다.
살다 보면 서로 한국어를 하는 게 맞는지 의심되는 순간들이 있다. 프로젝트 책임을 가지고 싸우는 회사 동료들, 결혼이나 출산 등의 주제로 어른들과 떠드는 순간이 그렇고, 일촉즉발 남북전쟁 등의 정치 뉴스를 볼 때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삼순이는 내가 그리던 30살 어른의 모습이다.
결핍을 대하는 김삼순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