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이는 영상 속 20년 전 여행, 그리고 아빠 캘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영상 속 11살 소피는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환하게 웃는다. 캠코더 속 캘럼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소피에게만큼은 환하게 웃어 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면 여지없이 힘들어한다.
여행 당시 소피가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다고 일차원적이라 할 순 없다. 20년 후 아빠의 나이가 된 소피가 회상하는 형식이라 그렇게 보일 뿐이다. 소피도 어린시절도 나름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열한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부모가 이혼했고, 아빠는 하는 일이 잘 안 되며 엄마는 새롭게 약혼한다니 말이다. 소피도 캘럼도 모두 이 여행에서 노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튀르키예 여행에서 부녀는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을 보낸다. 소피로선 아빠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그녀는 나름 새로운 세상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언니오빠들이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모습에서 뭔지 모를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동시에 소피도 여행지에서 만난 또래 남자아이와 입을 맞춘다.
어른이 된 소피가 캠코더 영상을 다시 보니 아빠 캘럼에 관해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아빠의 행동, 표정, 말투 등에서 우울이 짙게 묻어난다는 걸 발견한다. 그때 소피가 아빠의 우울을 알아차렸다면 뭐라도 할 수 있었을까. 우울의 조그마한 덩어리라도 가져올 수 있었을까. 우울의 한 면이라도 가릴 수 있게 힘을 북돋울 수 있었을까.
제목인 애프터 썬(aftersun)인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못 의미심장한데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햇볕을 차단하고자 피부에 바르는 크림이 아니다. 이미 햇볕에 타버린 피부인데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소피의 입장에서 20년이나 지나버렸기에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캘럼의 입장에서는 그의 마지막을 되돌리기엔 늦은 시간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해석이든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쓰이는 제목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 보고, 모든 걸 안 상태에서 영화를 다시 보기를 추천한다. 처음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11살의 소피가 보지 못한 걸 31살의 소피가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수수하고 평온하기까지 한 어느 부녀의 늦여름 여행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자체가 누군가의 기억 또는 영상 속 장면들의 모음에 불과하다. 가끔 아스라이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지고 마는 추억 속 저편의 순간들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굳이 캘럼의 남모를 사연을 내세우지 않아도 왠지 모를 슬픔, 아련함, 애처로움, 안타까움, 신산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오며 한숨과 울음을 동반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