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그림책에 나오는 을두지
김경희
을두지는 두 번째 계책을 내놓았다. 그는 "한나라 사람들은 이곳이 암석 지대이니 필시 샘물이 없으리라 생각해 이같이 장시간 포위해 우리의 곤란을 기다리는 모양입니다"라며 작전을 공개했다. 그의 작전은 잉어를 수초(水草)에 싸서 술과 함께 한나라 군사들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왜 이런 작전을 세웠는지는 고구려 태왕의 사과 편지와 함께 선물을 받아 든 한나라 장군의 반응에서 확인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나라 장군은 잉어·수초·술로 이뤄진 선물 세트를 보면서 '성안에 식수가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대로 포위하고 있으면 고구려가 절로 붕괴하리라는 판단을 거두게 된다. 봉쇄 정책으로는 항복을 받기 힘들다고 판단한 한나라 측은 고구려 태왕에게 공손한 답장을 보낸 뒤 철군을 단행했다.
북한 정권이 을두지를 영웅화하는 것은 오늘날의 북한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고구려를 그가 구해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장기간에 걸친 외세의 봉쇄 속에서도 끝까지 고구려를 지켜내고 한나라를 점잖게 돌려보낸 그의 모습이 오늘날의 북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
2022년에 <문화·경영·기술> 제2권 제2호에 실린 김경희 가천대 문화유산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논문 '북한에서 이루어지는 고구려 인물의 담론 형성 양상 : 을두지를 중심으로'는 "북한 사회에서 고구려 시기 인물 가운데 을두지는 대표성을 지니며 많이 호명되는 인물이다", "북한에서 을두지가 중학교·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등장하고 그림책 속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등등의 설명을 한다.
그런 뒤 을두지의 청야수성전이 북한 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소개한다. 김경희 논문에 따르면, 2009년에 <천리마> 제11호에 실린 황금석의 '고구려의 군사전법 – 청야수성전'은 "(고구려의) 가장 대표적인 전법이 청야수성전이었다"라며 "청야수성전은 고구려 시기에 창조돼 그 시기는 물론 후세 우리나라 역대 국가들의 반침략투쟁에서 널리 이용된 우수한 전법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내용을 소개한 뒤 김경희 논문은 "을두지는 고구려를 대표하는 반침략투쟁에서 애국심·슬기·용맹·용감성·자기희생성이 강조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북한도 마찬가지이지만 남한에서는 한반도 북부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 광개토태왕이나 을지문덕처럼 태산 같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을두지처럼 휴전선 건너편에서는 친숙한데도 이쪽에서는 그렇지 않은 인물들이 허다하다. 해당 인물의 후손이나 자료가 남쪽에 없어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분단과 냉전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 인식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태왕이 포위돼 고구려가 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을두지는 을파소 못지않게 널리 알려져야 할 인물이다. 그런데도 남한에서는 그의 존재가 널리 회자되지 않는다.
위 김경희 논문은 "남한 사회에서는 주로 재상가인 을파소가 교과서와 어린이책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한 뒤 "반면에 북한 사회에서는 병마를 담당하는 을두지 담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한다. 분단 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대 역사와 관련해서도 분단 상태가 존재하는 셈이다. 을파소도 잘 알고 을두지도 잘 알아야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이 형성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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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