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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이해와 오해 사이에 놓인 이 영화

[한국영화기행 2] 영화 <딸에 대하여>

24.09.01 17:17최종업데이트24.09.0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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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된다. 아프고 병들어 혼자가 된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진다. 그래도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늙어서도 가족이 자신을 돌봐준다는 것에 안위한다. 그런데 혼자가 된 사람들은 그런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두려워한다. 그래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 기대어 살아간다. 본인도 늙기 전에 쓸쓸하게 여생을 마무리하지 않기 위해 혼자가 된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내 곁에 누가 계속해서 있다면 혼자가 아닌 것이라고 믿는다. 혼자인 게 편한 듯 긴 시간을 살아왔지만 그들에게서 노년은 그 긴 시간에 대한 응답이다. 더 이상 혼자는 외롭고 무섭고 쓸쓸함을 표현하는 낱말일 뿐이다. 누군가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외롭고 무섭고 쓸쓸함을 채우는 일이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포스터

포스터 ⓒ 아토ATO


핵가족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족의 범위는 최대한 넓혀 봤자 부모, 배우자, 자식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여기서 부모를 떠나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중장년이 되면 자식 또한 자신의 길을 간다. 그러기에 보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배우자라는 존재는 가족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1인 가족의 포화 속에서 살아가는 현재, 배우자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존재하는 인물로 간주된다. 사람들은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영화 보고, 심지어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근미래에는 사람이 아닌 AI의 도움에 의해서 살아갈 확률이 커졌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역시 분명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결국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인지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우린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원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레인(하윤경)과 그린(임세미)

레인(하윤경)과 그린(임세미) ⓒ 아토ATO


엄마 정은(오민애)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간다. 그녀에겐 번듯한 대학을 졸업한 딸 그린(임세미)이 있다. 정은은 딸이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린이 이미 동성 연인 레인(하윤경)과 지내는 것을 알고 있다. 레인과 동거하던 딸이 방을 비워야 하는 상황에서 정은은 물질적 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래서 그린을 자신이 사는 집으로 불러들이지만 딸과 함께 레인이 들어오게 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제희(허진)을 돌보는 엄마 선희(오인애)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제희(허진)을 돌보는 엄마 선희(오인애) ⓒ 아토ATO


영화 <딸에 대하여>는 오랜만에 만나는 사려깊은 작품이다. 이미랑 감독은 두 가지의 이야기의 줄기를 토대로 영화를 완성하였다. 우선 요양보호사 정은이 치매를 앓고 있는 제희를 병원에서 돌보는 일이다. 장학재단까지 설립하면서 어려운 외국학생들을 후원했던 제희는 이제 병들어 제희 아니면 누구도 돌보지 않는 처지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에 대한 지원까지 끊기면서 병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써야하는 처지에 처한다. 정은은 그렇게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제희의 모습이 안스럽다. 어떻게 해서든지 제희의 상황을 이전과 같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병실까지 비워줘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제희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은에게는 유일한 딸이 있다. 영화를 정은과 치매 노인 제희, 그리고 정은과 그녀의 딸 그린의 두 가지 이야기를 병렬시킨다. 그리고 젋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았던 제희가 나이가 들고 혼자가 되면서 사람들에게서 등져지는 모습을 보며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는 딸이 그렇게 될까 걱정한다. 하지만 정은이 걱정하는 것은 딸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본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애인 레인과 없어서는 못 살 정도의 관계를 이어가지만 정은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사회가 허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정은의 표정을 통해서 보수적인 사회가 소수자에 대해서 그렇게 인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조용하게 보여준다. 딸 그린이 그 보수적 시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따져 묻고 변화 시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정작 가족인 엄마 또한 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은은 딸에 대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쩌면 제희처럼 평생 혼자 살아갈지도 못한다는 것(이것은 배우자와 자식이 없다는 것) 뿐 아니라 곧 자신을 떠날 딸에 대한 모습에 대한 비애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배우자와 자식을 떠나보내고 제희처럼 홀로 쓸쓸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가 본인이 될 것이라는 것에.

 어색한 관계를 견뎌내는 레인과 선희

어색한 관계를 견뎌내는 레인과 선희 ⓒ 아토ATO


<딸에 대하여>는 잘 읽히는 작품이다. 이것은 원작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잘 각색하였으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조연 한명 한명 살피면 우리가 드라마, 독립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한 몫을 한다. 제목처럼 영화는 딸에 대하여 생각하는 엄마에 관한 작품이다. 정은은 절대로 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하지만 누구보다 딸을 진정으로 대하는 레인을 보며 고집스런 껍질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어쩌면 이성 배우자보다 더 자신의 딸에게 잘하고 잘할 거라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모습을 영화는 슬며시 보여준다. 그 다른 모습 속에서도 진정성이 존재한다면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린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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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2022~ 유네스코 세계시민교육 중앙연구회 에듀무비공작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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