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일럿> 스틸컷
롯데 엔터테인먼트
면죄부를 놓친 코미디
코미디라는 장르는 면죄부를 하나 갖는다. 웃기면 그만이라는 것. 장르의 목적 자체가 기존 상식을 의도적으로 뒤틀어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기 때문. 그래서 코미디 영화는 개연성이 중요하지 않다. 복선을 회수하지 못해도, 스토리텔링이 매끄럽지 않아도 충분히 웃기면 호평받는다. 2019년 <극한직업>을 시작으로 최근 개봉한 <핸섬가이즈>까지 웃음에만 집중한 코미디 영화가 사랑받은 트레드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면죄부는 한순간 독이 든 성배로 바뀌기도 한다. 웃음이 나오지 않으면 유머 뒤에 숨은 단점들이 한순간 튀어나오기 때문. 관객들이 선웃음 후감동이라는 한국 코미디 영화 공식을 갈수록 외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도 공식을 답습한 <드림>으로는 100만 관객을 간신히 돌파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장 보통의 연애>의 김한결 감독이 스웨덴 영화 < Cockpit >(2012)를 리메이크한 <파일럿>은 면죄부를 받기 어렵다. 이유는 명확하다. 코미디와 스토리가 따로 놀면서 웃겨야 할 부분이 안 웃기다. 특히 젠더 이슈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는 깊이가 너무 얕은 나머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2024년 여름을 책임질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텐트폴 영화라기에는 실망스러운 지점이 많다.
물론 <파일럿>이 전혀 안 웃기다면 거짓말이다. 여장한 한정우가 남자라는 사실을 들킬 뻔한 중반부는 더러 큰 웃음을 자아낸다. 엄마의 칠순잔치 전후로 한정우와 한정미 남매가 보여주는 티키타카가 대표적이다. 한정우가 서현석 면전에서 욕을 뱉거나, 클럽에서 진짜 여성인 줄 알고 집적대는 남자들을 제압하는 장면도 돋보인다. 코믹 연기와 트랜스젠더 연기 경험이 많은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역량이 극대화된 결과물이다.
나름 근래 트렌드를 반영한 초반부의 빌드업도 꽤 안정적이다. 여장을 선택한 이유와 과정을 요즘 속도감으로 빠르게 밀어붙여서 몰입감을 높였다. 개연성이 부족하려는 순간에는 오히려 더 뻔뻔하게 코미디로 승부한다. 여동생으로 위장한 한정우가 면접장에서 궤변과 패기로 기어코 합격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할 때마다 장르적으로 먼저 선수를 치는 듯하다.
빠른 전개로 인한 빈틈도 열심히 채우려고 한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예능이나 다른 유튜브 크리에이터,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 덕분에 과장되거나 어색한 지점이 있어도 초중반부에는 적당히 수긍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일례로 한정우의 여장은 그다지 정교하지 않지만, 이 역시 코미디를 표방하는 시도로서 암묵적으로 용인되기에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