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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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은 1833년 10월 21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병약했던 노벨은 발명가였던 아버지의 작업실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불과 5살부터 발명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노벨이 성장하던 19세기 중반 유럽은 전쟁이 수시로 일어나며 열강들의 패권 다툼이 한창이었다. 노벨의 아버지 임마누엘 노벨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후원을 받아 지뢰와 수뢰 개발에 참여하며 무기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노벨 역시 러시아로 건너가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으며, 부친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아 불과 9살의 나이에 발명을 도울 만큼 화약과 화학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17세가 된 노벨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선진국에서 화학과 폭발물 기술을 습득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노벨의 목표였다. 여기서 노벨은 훗날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나이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나이트로글리세린은 유기화합물의 일종으로 강한 폭발성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적절한 용량을 체내에 투입하면 심혈관계 치료제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위험한 폭발력으로 인하여 전문 발명가들에게도 '악마의 물질'로 불릴 만큼 불안정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물질로 악명이 높았다. 흔히 노벨이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처음 합성한 인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많지만, 노벨은 훗날 이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하는 것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
빈털터리 된 노벨 가문
노벨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1853년 크림전쟁(Crimean War)이 발발한다. 러시아 정부는 전쟁 이후 대금 지급을 약속하며 노벨 아버지의 회사에 대량의 폭탄과 증기기관 개발을 주문한다. 하지만 3년 뒤 크림전쟁에서 패전하고 니콜라이 1세도 사망하면서 러시아는 노벨 회사와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 결국 무기공장은 파산하며 노벨 가문은 다시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노벨은 연구에 몰두하며 유학 시절에 접한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안정화해서 실용화시킬 방법을 찾는 데 집중했다. 당시 나이트로글리세린을 폭약으로 사용하는 데 있어서 최대 문제점은 불이 붙기만 하면 바로 폭발한다는 것이었다.
노벨은 아이들이 고무놀이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고, 도화선을 고무줄처럼 길게 만들어놓으면 심지가 타들어 가는 동안은 폭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고안해 낸다. 노벨이 처음 창안한 '뇌관'이라는 구조는 폭발물을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폭발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며, 이후로 폭발물의 사용 방식을 바꾼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꼽힌다.
1863년, 30세의 노벨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액체 폭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노벨이 만들어낸 액체 폭약은 동시대에 활용되던 흑색 폭약에 비하여 1000배 이상의 폭발력과 소량으로도 큰 폭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노벨은 폭약 완성 이후 고국 스웨덴으로 돌아와 폭약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를 발급받았고, 본격적으로 공장을 설립하여 액체폭약을 상업용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며 유럽은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원자재와 상품, 인력의 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빠른 길을 만들기 위하여 바다와 산을 부수거나, 지형을 바꾸려고 대규모 토목공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폭약의 수요가 높아졌다. 노벨은 액체 폭약으로 큰 수익을 거둬들이면서 발명가이자 사업가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폭약은 노벨에게 화려한 성공과 동시에 끔찍한 비극들도 연이어 불러왔다. 1864년 9월, 노벨의 공장이 액체폭약 폭발 사고로 전소되면서 동생 에밀을 비롯한 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 충격으로 노벨의 아버지도 뇌졸중을 일으켜 식물인간이 되었고 몇 년 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노벨은 가족을 잃은 아픔과 엄청난 경제적 손실 속에서도 스웨덴 철도청과 맺은 계약에 따라 액체폭약 개발을 계속해야만 했다. 하지만 새로운 공장 설립을 반대하는 스웨덴 정부와 주민들의 여론을 피하여 노벨은 궁여지책으로 호수의 배 위에 임시 공장을 짓고 폭약 개발 작업을 이어 나갔다.
비극적인 사고에도 불구하고 액체폭약의 인기는 스웨덴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다. 노벨은 해외에도 공장을 건설하며 사업을 계속 확장했다.
반복되는 폭발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