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카바티 극락축구단"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수카바티>는 보기 드물게 '마이너리티'를 주역으로 내세운 스포츠 영화다. 이들은 합리와 효율을 내세우는 이들, 혹은 '축덕'이라도 최고의 플레이를 보려는 이들에겐 당최 이해 불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왜 2부 리그의 별 볼 일 없는 팀을 저렇게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열광적으로 성원하는 걸까? 그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존재 격이다.
제작진은 영국에서 악명 높은 '훌리건'의 이면이나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는 영화나 드라마 작업이 접근하는 방법론과 동일한 궤로 안양 서포터즈의 탄생과 변천사를 조망한다. 안양이라는 도시공간의 작은 역사와 함께 현대 한국 사회에서 프로 스포츠가 어떤 배경 아래 출발했는지, 그리고 서포터즈 문화가 어떻게 태동했는지를 사회학적 분석을 살짝 가미해 해설하려 한다. 그런 역사적 설명은 영화의 주요 단락 부제로 표기된다.
첫 번째 단락 부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안양'이다. 여기에선 안양 서포터즈의 맹아와 함께 국내 스포츠 응원문화가 어떤 배경으로 출발했던가를 조명한다. 경제성장을 넘어 대중문화의 활성화, 그리고 PC통신으로 상징되는 초창기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와 안양이라는 로컬 커뮤니티의 뒷배경이 골고루 언급되면서 '노잼도시'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으려는 평범한 이들의 자발적 노력이 소개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점 하나, 비단 그런 설명이 축구에만 속하는 게 아니란 점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의 3S 정책으로 프로축구가 탄생했지만, 그런 기원을 초월하는 어떤 정서가 들어선 것처럼 당시에는 그런 다양한 '역전'이 일어나던 거대한 문화적 격변의 시절이었다.
프로야구에서 지역감정 표출의 무대이기도 했지만, 유독 뛰어난 성적을 내며 우승컵을 차지하던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활약이 1980년 5월의 비극을 안은 호남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그런 사례의 대표적 상징일 테다. 그 시절은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N.E.X.T의 음악을 들으며 '전복'과 '반전'을 상상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교실 이데아'를 합창하며 입시지옥에 대한 한풀이를 날리고,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따라부르며 낡은 법과 제도에 대한 비판에 도전하던 그 시절은 출발이 정치적 의도나 대기업의 이해관계일지언정, 그 틀 안에서 뭔가 대안적인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물론 너무나 짧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태생적 기원 덕분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배신과 환멸이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던 이들에게 벼락처럼 떨어진다. '최후의 심판'으로 표기된 두 번째 단락이 그 잔인한 증빙일 테다. 여기에서 서포터즈들은 과격해지고 외부자가 보기엔 탈법에 가까운 기행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K-훌리건'의 탄생을 보는 기분이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인터뷰에서 호명하기 무섭게 난동을 모의하는 증언이 이어진다. 제작진의 유머 감각이기도 하지만, 서포터즈들에게 잠재된 폭력성은 언제든 개방될 수 있다는 암시로도 기능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겪었던 좌절에 대해 평범한 시민들이 요즘 세상을 살면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무력감과 등치시키는 작업을 정교하게 세공해낸다. 안양 서포터즈들이 겪은 수난사는 힘없는 이들이 상시 겪는 체념과 냉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별난 사람들은 우리가 대개 '어차피 별수 없는 일'이라며 툭툭 던지는 불신과 무력함 대신에 자신들의 미약한 힘으로도 뭔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증명하고자 영화 내내 안쓰러울 정도로 노력한다. 그들에겐 자신들이 꿈꿨지만 이룰 수 없었던, 혹은 여러 조건 탓에 접어야 했던 숱한 꿈들의 아주 작은 조각을 서포터즈 활동으로 구현하려는 간절한 소망만이 순정체처럼 남아 있는 격이다. 그리고 마침내 미약하나마 꿈은 이루어진다. 세 번째 단락의 소제목처럼 그들만의 '극락축구단'이 완성된다. 그걸 그리 야멸차게 격하할 필요가 딱히 있을까.
스포츠 영화의 감동과 안양의 역사를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