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질문했던 사람들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의 삶을 살게 된 오스칼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경계에서 방황해야 했다. 오스칼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자신의 자리를 자문했다. 그렇게 오스칼은 자신에게 주어진 남자의 삶이 아닌 여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자의 삶을 부여하며 이루고자 했던 '조국에 대한 봉사'를 포기하진 않는다.
주어진 삶을 돌아보고 회의했던 오스칼은 그 덕분인지 귀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여타 귀족들과는 다른 견해를 보인다. 대다수 귀족들은 자신이 귀족의 삶을 사는 것과 평민이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오스칼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귀족으로서 누리는 삶에 의문을 갖고, 나아가 민중의 어려운 삶을 대면하고는 그들의 삶에까지 질문을 던진다.
<베르사유의 장미>에 등장하는 베르날 샤틀레를 비롯한 민중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오스칼과 유사하다. 비록 계급과 지위는 다르지만, 민중은 자신에게 주어진 팍팍한 삶을 회의한다. 오스칼과 민중은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다르게 살 순 없나'라는 질문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살아온 나
누군가의 강요 앞에 굴복한 게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입는 옷까지 모든 건 오직 나의 선택"
오스칼은 존재에 대한 의문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시킨다(넘버 '나 오스칼'). 이는 파리의 민중도 마찬가지다. 민중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혁명을 벌이기로 한다. 귀족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근위대에서 나와 위병대로 들어간 오스칼은 민중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끝에, 그들의 혁명에 가담하기로 한다.
이렇게 캐릭터의 고민을 녹여낸 성장 스토리 속에 혁명의 이야기가 녹아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막바지에 이르러 오스칼과 민중이 투쟁하는 장면은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연상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