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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둔갑한 스파이, 문학 배우고 싶다는 제자의 실체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액션과 문학으로 빚어낸 창작 뮤지컬 <스파이>

24.09.09 15:40최종업데이트24.09.0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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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스파이> 공연사진
뮤지컬 <스파이> 공연사진미스틱컬쳐

첩보 액션 < 007 >과 <미션 임파서블>의 테마곡을 연상시키는 멜로디가 무대에 흐른다. 이 멜로디는 곧 다른 음악으로 변주되고, 무대 위 스파이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8년 만에 임무를 부여받은 스파이 '퀸틴'과 그를 찾아온 의문의 청년 '제이', 그 뒤에 있는 'C국장'의 이야기를 다룬 국내 창작 뮤지컬 <스파이>가 첫 선을 보인다.

스파이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

작품의 배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펼쳐진 냉전 시기다. 남들 보는 데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이 아닌, 이념과 체제의 우월성을 두고 경쟁하는 시기였다. 그 과정에서 비밀스러운 첩보 작전을 통해 상대국의 정보를 취급하는 스파이의 활동도 왕성했다. 뮤지컬 <스파이>에 등장하는 퀸틴도 그런 스파이 중 한 사람이다.

퀸틴은 과거의 작전 실패 탓에 8년 동안 책상에 앉아 보고서나 쓰는 신세다. 하지만 늘 현장에서 활동하길 갈망했고, 그런 퀸틴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상사인 C국장은 퀸틴을 작가로 둔갑시켜 영국의 한 시골 동네에 보내고 시시각각 임무를 부여한다.

이쯤에서 퀸틴이 스파이가 된 이유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퀸틴은 전쟁을 겪었고, 그 참상을 목격하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이 스파이였고, 그가 스파이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다.

아직 자신의 임무를 다 파악하지 못한 퀸틴에게 어느 날 제이가 찾아온다. 제이는 퀸틴에게 문학을 배우고 싶다고 고백하고, 퀸틴은 이를 스파이 업무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몰두한다. 퀸틴은 제이에게 실제로 겪은 일을 써보라고 권하고, 제이는 직접 겪은 전쟁의 참상을 써내려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퀸틴은 어딘가 찜찜한 구석을 발견하고, 제이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C국장이 보낸 스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제이 역시도 어딘가 어색한 부분을 알아차리고, 퀸틴을 통해 진실을 듣게 된다. 그렇게 C국장의 야망과 음모가 드러난다.

세 인물은 모두 전쟁의 한복판에서 비참함을 목도했지만, 이후 삶의 궤적은 상이했다. 퀸틴과 제이는 전쟁의 아픔을 알기에 전쟁을 막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다짐한 반면, C국장은 사람이 죽더라도 자신의 야망을 채우는 일을 계획한다. 여기서 작품의 선악 구도가 완성된다.

 뮤지컬 <스파이> 공연사진
뮤지컬 <스파이> 공연사진미스틱컬쳐

시대 속에서 인물 이해하기

시간이 지나면서 핵무기와 제3차 세계대전이 C국장의 야망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악 구도는 더 분명해진다. 작품의 관심사는 세 인물의 이야기에서 세계 전체로 확대되고, 인류의 평화와 전쟁이라는 주제까지 더해지며 양 측을 대비시킨다.

우리는 이런 선악 구도도 포착해야 하지만, 동시에 시대 상황으로 눈길을 돌려볼 필요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작품의 배경은 냉전 시기이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전쟁을 겪었다.

C국장의 야망에는 일면 전쟁의 아픔이 녹아있다. C국장은 전쟁 당시 주변 인물 모두를 잃는 비참함을 경험하며, "힘"과 "생존"에 집착하게 되었다. 잃고 결여된 것에 대한 집착은 C국장의 야망을 불러왔다. 이런 서사는 '악인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냉전은 이데올로기 경쟁을 강화하고, 국가에 대한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했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세뇌당하며 첩보원으로 길러진 제이는 그 단적인 예다. 퀸틴이 아니었다면, 그는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누군가의 야욕에 이용당하다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을 테다.

어쩌면 그 운명이 스파이의 본질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스파이 활동을 통해 사람을 살리겠다는 퀸틴의 다짐 역시 허황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애당초 스파이 활동으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면, 퀸틴의 다짐도 시대 상황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 있다.

 뮤지컬 <스파이> 공연사진
뮤지컬 <스파이> 공연사진미스틱컬쳐

한편, <스파이>가 사용한 액션과 문학적 비유도 눈여겨볼 만하다. 공연은 10월 27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이어진다. 성태준, 정동화, 원태민이 '퀸틴'을 연기하고, 송유택, 현석준, 이진우, 최병찬이 '제이'를 연기한다. 외에 강정임, 김리, 김수용, 심수영, 이태이, 김태환 등이 함께 출연한다.
공연 뮤지컬 스파이 동국대학교이해랑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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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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