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는 부실한 크레인을 통해 회계비리가 적발된다.
SBS 갈무리
정경유착은 노동자보다는 대기업 쪽으로 기울기 쉬운 국가권력을 더욱 더 대기업 편이 되게 만들었다. 재벌기업이 주는 정치자금을 '감사'해 하는 국가는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저임금을 강요했다. 경찰력을 회사 구사대처럼 파견해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또 노동자들과 정권이 서로 고마워하는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게 막는 제도적 장치가 작동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3년 3월 8일 제정된 노동조합법 제24조는 "노동조합원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징수할 수 없다"(제1항)라며 "노동조합 기금은 정치적 자금에 류용할 수 없다"(제2항)고 못 박았다. 노동자들의 정치자금이 정치권에 흘러 들어갈 수 없게 해놓은 것이다.
이 법은 박정희 쿠데타 이후인 1963년 4월 17일 개정됐다. 이때는 위 조문이 제12조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내용이 편입됐다. "노동조합은 공직선거에 있어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제1항이 되고, 원래부터 있었던 위의 두 조항은 각각 제2항 및 제3항이 됐다.
이 같은 억압적 구조를 발판으로 박 정권은 재벌기업과 유착하며 서로 고마워하는 관계를 이어갔다. 이는 기업 내부의 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게 만드는 한 가지 원인이 됐다.
정권이 기업이나 전경련(한경협)의 정치자금을 수수하지 못하게 막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자금만 철저히 봉쇄했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자격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정치활동을 금전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는 노동자의 정치활동을 억제할 뿐 아니라, 노동자와 국가권력을 이간질하는 기능도 함께 수행했다. 국가권력이 재벌기업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막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만큼은 철저히 차단한 것이다.
이런 구도 때문에도 노동자와 국가권력은 가까워지기 힘들었다. 권력이 노동자의 후원금을 받지 못하게 막는 시스템은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국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차갑고 냉랭한 국가를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권력이 노동자의 돈을 받지 못하게 한 목적이 노동자와 정치권력이 깨끗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동자와 정치권력의 협력적 관계를 차단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위의 노동조합법 규정은 재벌기업의 이해관계를 상당히 많이 반영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11월 25일, 헌법재판소는 노동조합법 제12조가 헌법 제11조의 차별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이랬다.
"민주주의에서 사회단체가 국민의 정치의사 형성 과정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와 기능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단체는 다른 사회단체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서 같게 취급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 법률 조항이 다른 이익단체, 특히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이나 사용자단체의 정치헌금을 허용하면서 유독 노동단체에게만 정치자금의 기부를 금지한 것은 노동단체로 하여금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활동의 영역을 다른 사회단체와 달리 차별대우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동자도 정치권력을 정당하게 후원하고 정치권력이 노동자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일찍부터 정착됐다면, 노동자 대 국가의 관계는 훨씬 바람직한 방향으로 형성됐을 것이다. 그러지 못해 재벌과 국가권력 사이에서만 후원금이 오가고 이들끼리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정경유착이 굳어지고, 이것이 한국사회와 재벌기업 모두를 병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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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