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MBN
이날 정조는 한나라 외척인 두광국(竇廣國, ?~BC 151)을 거론했다. 한문제(한나라 문제)의 처남인 두광국은 겸손과 검소로 일관한 모범적인 외척이었다. 정조는 두광국 같은 외척의 정치 참여도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을 표했다.
외척에 대한 그 같은 부정적 인식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사극에 반영되고 있다. 사극에 나오는 왕후의 가족들 상당수는 권력에 대해 과도한 욕심을 부린다. 이들은 자기 실력이 아닌 딸 혹은 누이의 힘을 빌려 권세를 잡으려 한다. 이들이 그런 욕심을 내지 않더라도 세상은 이들이 그러리라 생각하며 그 방향으로 몰아간다.
MBN 사극 <세자가 사라졌다>의 윤이겸(차광수 분)도 전형적인 외척이다. 민씨와 더불어 대표적인 왕후족 성씨인 윤씨의 일원인 그는 중전의 아버지이자 좌의정으로서 권력에 대한 무한 탐욕과 집착을 보여준다.
왕조시대에는 왕의 친족인 종친과 왕후의 친족인 외척이 모두 다 경계의 대상이었다. 역모 사건이 터지면 종친과 외척 중에서 종친이 우선적으로 의심을 받았다.
민중혁명과 달리 일반적인 역모사건에서는 왕족이 왕으로 추대되곤 했으므로, 이런 경우에 세상의 이목은 평소에 실권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왕족들에게 순식간에 집중됐다. 왕의 '대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처럼 집중 견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종친들은 조정은 물론이고 대궐 사무에도 섣불리 개입하기 힘들었다.
외척도 조정과 대궐 사무에 간여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종친과 달리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틈'이 많았다. 외척들은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세력을 확대했다. 이들 가문의 기대주인 중전이나 대비가 그런 틈을 만들어냈다.
군주가 '선출'이 아닌 '출산'으로 생산되던 시절이었다. 이런 왕조시대에는 군주를 낳는 몸인 왕후가 신성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왕후를 배출한 가문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줬다. 이것이 외척 발호의 '틈'이 됐다.
왕후는 궁궐 여성들로 조직된 내명부와 관료 부인들로 조직된 외명부를 이끌었다. 왕실에 홀로 시집간 여성이 이런 조직을 관리하자면, 친정 쪽의 조언이나 인적 자원에 의존하기 쉬웠다. 이것도 '틈'이 됐다.
대통령 배우자 인척에 대한 견제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