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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보고 김건희 여사 가족이 떠오른 이유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MBN <세자가 사라졌다>

24.06.05 15:23최종업데이트24.06.0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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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배우자가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일은 있어도, 대통령 배우자의 가족이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 '대통령 인척' 하면 전두환씨의 배우자 이순자 일족의 이미지가 가장 강렬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일족 역시 이에 못지않게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떠들썩한 논란이 된 것은 물론, 대통령 재임 중에 장모가 구속되는 일까지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보다 더한 측면도 없지 않다.
 
모든 대통령의 인척들이 이순자, 김건희 여사 가족처럼 한 것은 아님에도 대통령 인척의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다. 이는 대통령 인척들이 잘못을 범한 사례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지만, 어느 정도는 역사적 요인에도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왕후 가문에 대한 전통적 인식이 대통령 인척들에 대한 시선에 영향을 주는 측면도 있다.
 
세계적으로 왕실이 몰락하기 시작한 지는 100년 정도 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비교적 최근 현상이다. 수천 년간의 왕조시대에 형성된 왕후족 또는 왕비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오늘날의 대통령 인척에 대한 인식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조정의 공식 일기인 음력으로 정조 즉위년 9월 12일 자(양력 1776.10.23) <일성록>에 따르면, 정조는 외척을 척리(戚里)로 지칭하면서 "아! 척리가 국가의 해가 된 것은 옛날부터 항상 그러했다"며 자신은 외척이 아무리 유능할지라도 이들을 조정에 참여시키는 것을 경계해왔다고 말했다.
 
왕조시대 경계의 대상, 종친과 외척
 
 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MBN
 
이날 정조는 한나라 외척인 두광국(竇廣國, ?~BC 151)을 거론했다. 한문제(한나라 문제)의 처남인 두광국은 겸손과 검소로 일관한 모범적인 외척이었다. 정조는 두광국 같은 외척의 정치 참여도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을 표했다.
 
외척에 대한 그 같은 부정적 인식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사극에 반영되고 있다. 사극에 나오는 왕후의 가족들 상당수는 권력에 대해 과도한 욕심을 부린다. 이들은 자기 실력이 아닌 딸 혹은 누이의 힘을 빌려 권세를 잡으려 한다. 이들이 그런 욕심을 내지 않더라도 세상은 이들이 그러리라 생각하며 그 방향으로 몰아간다.
 
MBN 사극 <세자가 사라졌다>의 윤이겸(차광수 분)도 전형적인 외척이다. 민씨와 더불어 대표적인 왕후족 성씨인 윤씨의 일원인 그는 중전의 아버지이자 좌의정으로서 권력에 대한 무한 탐욕과 집착을 보여준다.
 
왕조시대에는 왕의 친족인 종친과 왕후의 친족인 외척이 모두 다 경계의 대상이었다. 역모 사건이 터지면 종친과 외척 중에서 종친이 우선적으로 의심을 받았다.
 
민중혁명과 달리 일반적인 역모사건에서는 왕족이 왕으로 추대되곤 했으므로, 이런 경우에 세상의 이목은 평소에 실권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왕족들에게 순식간에 집중됐다. 왕의 '대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처럼 집중 견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종친들은 조정은 물론이고 대궐 사무에도 섣불리 개입하기 힘들었다.
 
외척도 조정과 대궐 사무에 간여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종친과 달리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틈'이 많았다. 외척들은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세력을 확대했다. 이들 가문의 기대주인 중전이나 대비가 그런 틈을 만들어냈다.
 
군주가 '선출'이 아닌 '출산'으로 생산되던 시절이었다. 이런 왕조시대에는 군주를 낳는 몸인 왕후가 신성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왕후를 배출한 가문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줬다. 이것이 외척 발호의 '틈'이 됐다.

왕후는 궁궐 여성들로 조직된 내명부와 관료 부인들로 조직된 외명부를 이끌었다. 왕실에 홀로 시집간 여성이 이런 조직을 관리하자면, 친정 쪽의 조언이나 인적 자원에 의존하기 쉬웠다. 이것도 '틈'이 됐다.
 
대통령 배우자 인척에 대한 견제 심리
 
 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MBN
 
일반적인 경우에 현직 군주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모'만 있는 경우가 거의 다였다. 군주의 아버지가 살아있는 경우는 드물었으므로 현직 군주를 자식으로 대하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대개 다 왕후나 대비뿐이었다. 이 역시 군주가 아버지 쪽 친족보다는 어머니 쪽 친족의 영향을 많이 받게끔 만드는 '틈'이 됐다.
 
외척들은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왕후를 지켜야 했다. 왕후를 지킨다는 것은 왕후의 남편인 왕의 권세를 지켜주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외척들의 권력 행사는 왕권을 보필하는 모양새를 띠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외척들이 왕의 협력자 이미지를 갖고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가능케 하기도 했다. 이 역시 틈이 됐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외척은 종친보다 견제를 덜 받으며 대궐과 조정에 개입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왕족보다 외척에게서 더 많은 폐해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왕후족에 대한 오랜 경계심은 이런 경험에서 싹텄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대통령 배우자는 왕후만큼의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왕후의 책봉식은 있었지만, 대통령 배우자의 취임식은 없다. 왕후에게는 궁녀와 관료 부인들을 이끌 권한이 있었지만, 대통령 배우자에게는 대통령실 직원들을 단속할 권한이 없다. 왕의 유고 시에는 왕후나 대비가 비상대권을 행사했지만, 대통령 유고 시에 권한대행을 맡는 쪽은 부통령이나 총리다.
 
이처럼 대통령 배우자의 권한은 왕후의 권한보다 현저히 낮다. 그런데 왕후족에 대한 오랜 견제의 영향으로 인해 대통령 배우자의 가족에 대한 견제 심리는 오늘날도 상당하다. 과거보다는 낮아졌어도 여전히 상당하다. 이는 대통령 배우자 일족이 옛날보다 훨씬 적은 권력을 누리면서도 옛날 못지않은 견제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을 감안해 보더라도, 대통령 배우자 일족은 과거의 외척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항상 살얼음판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 이순자 일족이나 김건희 여사 가족의 조심성은 현저히 낮은 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건희 이순자 대통령친인척 왕후족 왕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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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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