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의 수원 삼성이 2부리그에서의 첫 시즌 출항 3개월만에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구단은 아직 염기훈 감독을 신뢰한다는 입장이지만, 팬들의 반발과 갈등은 오히려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23시즌 K리그1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다이렉트 강등을 당한 수원은, 창단 이후 처음으로 2부리그에서 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수원은 올시즌을 앞두고 구단의 레전드 출신인 염기훈을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며 1부리그 승격의 막중한 책임을 맡겼다.
하지만 염기훈호는 2부리그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3경기를 치른 시점에 6승 1무 6패, 승점 10점에 그치며 K리그2 6위에 머물고 있다. 더구나 5월 들어 최근 굴욕적인 4연패까지 당하며 순위가 크게 추락했다. 성남FC(1-2), 천안시티FC(0-1), 부천FC(0-1)에 이어 충남아산(0-1)에까지 한 수아래로 꼽히던 상대들에게 내리 패배하며 충격이 컸다. 4경기 연속 한 골차 패배에 3경기 연속 무득점 패배다.
다이렉트 승격이 가능한 1위인 FC안양(27점)은 수원보다 아직 한 경기를 덜 치른 시점에 벌써 8점 차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25일 열리는 수원의 다음 경기 상대도 리그 4위 서울 이랜드(승점 19)라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만일 이랜드전마저 패하면 수원은 5연패와 5월 전패에 이어, 최대 9위까지도 추락하는 불명예 기록을 세울수 있다.
K리그1에서 4번이나 정상에 올랐던 구단의 명성, 지난 시즌까지 1부 리그에 있었다는 자존심, 2부리그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막강한 팬덤과 관중동원력까지 감안하면 수원 팬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자연히 최근 수원 팬들의 분위기는 험악함 그 자체다. 특히 부진을 바라보는 여론의 화살은 '초보' 염기훈 감독의 리더십에 집중되고 있다. 3연패를 당했던 부천전에서 이미 서포터즈로부터 단체로 '염기훈 나가' 콜을 듣는 수모를 당했다. 급기야 4연패를 당했던 충남아산전에서는 더 나아가 팬들이 구단 버스를 가로막고 염 감독과의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10여분간 지속된 양측의 대화 내내 가장 내내 언급된 단어는 '책임'이었다. 수원팬들은 염기훈 감독에게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여기서 어떻게 더 응원을 해달라는 건가, 저희는 응원하는 기계가 아니다. 이러다가 승격에 실패한다면 그때가서 어떻게 책임질 거냐,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 분명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거취에 대한 결단을 촉구했다.
이에 염기훈 감독은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당연히 모든 책임은 저한테 있다. 이런 식으로는 시즌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은, 저도 팬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라고 사과하면서도,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구단과 논의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이 자리에서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사실 염 감독은 구단의 레전드 출신임에도 선임 당시부터 수원 팬들 사이에서는 그리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염 감독은 지난해 감독 대행시절 7경기 3승 2무 2패를 기록했고 결과적으로 수원의 2부 강등을 막지 못했다.
수원 팬들은 다음 시즌 1부 승격을 목표로 해야하는 팀이, 또다시 지도자 경험이 부족한 초보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결정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수원 공식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는 염기훈 감독 선임설이 나오자 공식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우려한대로 염기훈 감독 역시 정식 감독 데뷔 첫시즌 3개월만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 팬들은 시즌 초반 염기훈 감독의 리더십과 전술운용능력에 물음표를 제기하고 있다. 2부리그에서의 경쟁도 결코 녹록지 않은 데다 계속되는 팬들의 압박과 갈등은, 초보 감독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구단의 레전드 출신에게 감독을 맡겼다가 가장 최악의 파국을 초래한 것은, 바로 지난해 전북 현대의 사례가 대표적다. 전북은 선수와 코치를 거치며 왕조의 전성시대를 모두 함께했던 김상식(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며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김상식 감독은 2023년 극심한 성적부진 속에 전북 팬들과도 갈등을 빚다가 결국 자진사퇴했다. 재임 말기에는 전북 팬들이 아예 노골적으로 응원을 거부하는가 하면, 김 감독은 전북 레전드에서 금지어 취급을 당할 정도로 관계가 최악이었다. 전북은 김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야 4위까지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염기훈 감독이 처한 상황은 어쩌면 작년의 김상식 감독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김상식 감독은 과정은 둘째치고라도 리그와 FA컵 우승을 한 차례씩 차지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남겼고, 구단의 지지 또한 확고했다. 반면 염 감독은 지난해 수원의 강등을 막지 못한 책임의 지분이 있는 데다, 정식감독 부임부터 팬들의 반대 여론에 직면하며 리더십의 기반이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수원 구단은 일단 염기훈 감독을 신뢰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성적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팬들의 여론이 점점 악화된다면 구단으로서도 부담이 점점 커진다. 애초에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임을 강행했던 염 감독을 반 시즌도 지나기 전에 물러나게 한다면, 구단 역시 잘못된 감독선임에 대한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
축구 관계자들은 일단 25일 이랜드전 결과가 어쩌면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염기훈 감독이 과연 벼랑끝에서 기사회생하며 다시 한번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아니면 제2의 김상식 감독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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