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된 지도 어느덧 3개월을 넘겼다. 6월 A매치 기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새 감독 영입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축구협회는 지난 2월 카타르 AFC 아시안컵 이후 클린스만을 경질하면서 후임 감독을 물색해왔다. 초기에는 국내파 감독 체제에 무게가 실리는 듯했으나, K리그 현직 감독 차출에 대한 축구팬들의 강력한 반발, A대표팀 임시감독을 맡으며 유력한 차기 정식 감독 후보로 부상했던 황선홍 U-23 감독의 파리올림픽 진출 실패 후폭풍 등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며 다시 외국인 감독 영입으로 선회해야 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 영입도 쉽지 않았다. 에르베 르나르, 제시 마시 등 유력한 우선순위로 꼽히던 후보들과의 협상이 줄줄이 무산됐다. 르나르 감독은 현재 프랑스 여자축구대표팀을 맡고 있으며 아프리카 팀들의 영입제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시 감독은 최근 한국 대신 캐나다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선택했다. 또다른 차순위 후보로 거론되던 헤수스 카사스 감독은 이라크 대표팀 잔류를 선언했다.
현재 그나마 유력한 차기 대표팀 감독 후보로 다시 부상한 인물은 세뇰 귀네슈 감독이다. 튀르키예 출신의 명장인 귀네슈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로 이끌며 그해 'UEFA 올해의 감독'에 선정될 만큼 명성을 떨쳤다. 2007년부터 3년간 K리그 FC서울의 지휘봉을 잡아 호평을 받으며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친숙한 '지한파'다.
귀네슈 감독은 지난 4월 KBS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한국대표팀 감독직에 지원한 사실을 직접 공개하며 "지도자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한국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귀네슈 감독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실제 한국의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귀네슈의 모국인 튀르키예 언론에서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너무 고령이라는 이유로 귀네슈의 영입을 거절했다"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귀네슈 감독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한국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축구가 우선순위로 영입을 타진했던 외국인 감독들과의 협상에 줄줄이 실패하면서, 다시 귀네슈 감독에게 기회가 돌아오는 분위기다. 이미 일부 언론에서는 귀네슈 감독과의 협상이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5월까지 차기 감독 선임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던 축구협회는, 올림픽대표팀의 10회 연속 본선진출 실패, 정몽규 회장의 4선 연임 시도 등으로 이미 분위기가 좋지않은 상황에서 차기 A팀 감독 선임마저 또다시 지체된다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부담이 큰 상황이다.
축구팬들의 귀네슈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의 시각도 일부 존재한다. 귀네슈 감독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다른 후보군이나 한국축구 역대 외국인 감독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불과 6개월 전까지 자국 튀르키예의 명문 구단 베식타스의 감독을 지냈을 정도로 현장감각에도 문제가 없다.
무엇보다 귀네슈 감독이 다른 외국인 감독들에 비하여 차별화된 장점은, 한국에 대한 '진정성 있는 관심과 애정'이다. 귀네슈 감독은 서울 시절,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못했지만 기성용과 이청용 등 훗날 한국축구를 이끌어가게 되는 유망주들을 적극 발굴해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한국 팬들과의 관계도 매우 우호적이었다.
여러 차례 한국대표팀 감독 후보로만 이름이 거론되다가 낙방하면서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건만, 귀네슈 감독은 지금도 심지어 여러 인터뷰에서 몸값 등 조건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고 지도자 인생 마지막을 한국 대표팀에 쏟겠다는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대표팀 감독을 단지 커리어 관리의 수단이나 협상의 지렛대로만 삼으려던 다른 외국인 감독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한국축구는 바로 전임 외국인 감독이었던 클린스만의 '워크에식(직업 윤리)' 문제를 간과했다가 큰 곤경을 경험해야 했다. 한국축구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고, 한국대표팀을 이끌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귀네슈 감독은, 검증된 프로의식이라는 측면에서 클린스만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인물이다.
물론 귀네슈에게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공통된 불안요소는 역시 고령의 나이로 인한 '올드 리스크'다.
지도자에게도 나이라는 요소는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명장으로 불리던 인물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판단력, 체력, 열정, 감각 등이 하락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한국축구 역대 최고의 외국인 감독으로 꼽히는 거스 히딩크나, 파비오 카펠로, 아르센 벵거 같은 명장들도 60대를 넘긴 이후의 지도자 커리어는 뚜렷한 하락세를 드러낸 바 있다.
귀네슈 감독은 1952년생으로 무려 72세의 고령이다.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면 사실상 그의 마지막 지도자 경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귀네슈 감독은 지도자 경력의 대부분을 모국 튀르키예에서만 보냈고, K리그 서울 감독을 3년간 역임한 것 외에는 해외축구나 빅리그 경험이 아예 전무하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의 UEFA 리그랭킹은 9위로 중상위권이지만 5대 빅리그(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와는 확연한 수준차이가 존재한다. 튀르키예 대표팀은 2002 한일월드컵 이후 20년간 월드컵 본선진출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로 인하여 귀네슈 감독이 과연 현대축구의 흐름을 반영하고 따라가기에 적합한 지도자일지는 의구심이 남아있다.
또한 우려되는 부분은, 협회가 다른 외국인 후보들간의 협상 무산과 '5월 데드라인'이라는 자체적으로 설정한 시간에 쫓겨서 성급하고 무리하게 귀네슈 감독과의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다. 실제 비슷한 사례로 축구협회는 2014년 또다른 최악의 외국인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라는 반면교사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6월 A매치까지도 한 번 더 임시감독 체제로 소화하고 다음 A매치 일정인 9월 월드컵 최종예산까지 기간을 연장하여 감독 영입작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과연 귀네슈 감독은 숙원인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을수 있을지, 축구협회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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