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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여성 '헤르메스', 호평-우려 모두 나왔다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배우 최정원이 '헤르메스 역' 맡아

24.05.13 14:34최종업데이트24.05.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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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헤르메스'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최정원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헤르메스'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최정원에스앤코(주)
 
최근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출연진이 공개됐다. 멜로망스의 김민석이 주인공 '오르페우스'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는데, 이에 못지 않게 화제가 된 것은 뮤지컬 디바 최정원이 '헤르메스' 역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작품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오르페우스를 지하세계로 안내하는 헤르메스는 <하데스타운> 초연 당시 최재림, 강홍석 등 남자 배우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재연을 맞이하여 최재림, 강홍석과 함께 여자 배우인 최정원이 캐스팅된 것이다. 공연계에 불고 있는 '젠더프리(gender-free)'의 바람이 이어진 것이다.

젠더프리 캐스팅이란 배우의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젠더프리는 '젠더크로스(gender-cross)'에 의미상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젠더크로스는 남성 배역을 여성 배우가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처럼 배우의 성별을 교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데스타운>에서 최정원이 헤르메스를 연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엄격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 젠더프리와 젠더크로스를 같은 개념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젠더프리의 핵심은 배역을 맡는 배우의 성별이 젠더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에는 남자 배우만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에는 여성 배역도 남자 배우가 맡았다. 이를 두고 누가 젠더프리라 부를 수 있을까. 따라서 젠더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우에게 성별을 뛰어넘어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지,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20세기 초반부터 계속된 무대 위 '젠더프리'

젠더프리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프랑스 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20세기 초반 '햄릿'을 연기하며 유명세를 떨쳤다(화가 알폰스 무하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현대적인 시도처럼 보이는 젠더프리가 사실상 10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국내에서는 2001년 배우 박정자가 연극 <에쿠우스>에서 '유진 다이사트 박사'를 연기한 것이 첫 젠더프리 사례다. 박정자는 2023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남성 배우들이 연기하던 '럭키' 역을 맡았다. 당시 캐스팅은 박정자의 자발적인 요청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4월 26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개막한 <고도를 기다리며> 앙코르 공연에 박정자는 참여하지 못했다. 저작권을 소유한 '사무엘 베케트 에스테이트'에서 여성 배우 출연을 반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에서는 처음으로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헤롯왕' 역에 김영주가 캐스팅되었다. 이후 <광화문연가>에서 배우 차지연이 초월적 존재 '월화' 역을 맡은 것과 <록키호러쇼>의 '콜롬비아' 역에 남녀 배우를 더블 캐스팅한 사례도 있다.

특히 차지연은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코미디언 박미선, 배우 김호영이 진행하는 유튜브 프로그램 <칭찬지옥>에 출연해, 앞으로 연기하고 싶은 역할에 대해 '지킬 앤 하이드'라고 답하며 '젠더프리'에 대한 뜻을 밝혔다. 진행자들은 큰 호응을 보냈고, 차지연은 <지킬 앤 하이드>의 제작사 대표를 향해 영상편지를 보내며 웃음을 자아냈다.

젠더프리를 둘러싼 엇갈린 반응들
 
 유튜브 <칭찬지옥>의 한 장면.
유튜브 <칭찬지옥>의 한 장면.칭찬지옥
 
관객의 반응은 어떨까. 관객들 사이에서도 호평과 우려가 공존했다.

20대 여성 A씨는 젠더프리가 "관객 개개인이 지니고 있던 성별 고정관념을 완화할 수 있는 기회"라며, "젠더프리 캐스팅이 지금보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남성 B씨도 "해당 배우의 팬 입장에서 그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같은 역할을 다른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캐릭터의 다양한 해석을 즐길 수 있다"고 호평했다. 다만 "꼭 젠더프리가 아니더라도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주는 장점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30대 남성 C씨는 "헤롯을 연기한 김영주, 살리에리를 연기한 차지연은 배우가 배역을 표현하는 데 거부감 없는 실력을 갖췄던 사례"라며 '젠더프리' 연기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다른 20대 여성 D씨는 "초연이나 창작 뮤지컬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기존에 남성이 주로 맡아오던 역할을 여성이 맡게 될 경우 이질감이 든다"며 "관객 입장에선 비싼 돈을 주고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젠더프리'를 시도한 캐스트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처음 보는 관객에게는 진입장벽이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짚었다.

공연계와 전문가들의 평가 역시 엇갈린다. 최재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교수와 연구자 송아람은 논문 '동화 기반 뮤지컬 <마틸다(Matilda)>와 <난쟁이들>의 젠더 정체성 연구'에서 젠더프리 캐스팅을 통해 "성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호평했다. 

반면 비판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연출가 김태형은 <연극평론> 2018년 겨울호(91권)에서 배우들이 다른 성별을 연기하기 위해 과장된 연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배우들이 과장된 연기를 하는 순간 그것이 희화화될 가능성이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극사를 전공한 김태희도 <연극평론>에 기고한 글 '젠더 구별 없애기, 득인가 독인가'에서 젠더프리에 대해 여전히 "고민스럽다"며 "젠더프리 캐스팅이 반대로 얼마 되지 않는 여성의 역할을 남성에게 넘겨줄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는 애매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예술의 역할을 고려할 때, 이런 시도는 어쩌면 공연의 당연한 책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젠더프리를 구현하는 방식,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공연 뮤지컬 연극 젠더프리 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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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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