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공연사진
에스앤코(주)
현대적인 표현 기법으로 전하는 위로
차갑고 단순하게 말해 <디어 에반 핸슨>은 한 소년이 거짓말을 하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이 밉게 느껴지지 않고, 또 별 거 없어 보이는 소재가 160분 분량의 뮤지컬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 에반이 한 거짓말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탄탄하고, 거짓말에서 비롯된 위로의 메시지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덕분이다.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에반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지만, 한편으로 타인의 관심을 희망한다. 이런 에반의 심리는 넘버 'Waving Through a Window'를 통해 잘 드러난다.
"누군가 날 알아볼 거라 믿고 / 한참을 그저 기다려봐도
모두 나를 지나쳐갈 뿐 / 난 손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나요 / 날 알아봐줄 사람 없나요"
에반이 스스로에게 쓴 편지를 코너가 에반에게 쓴 편지라고 오해한 채, 코너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코너의 부모님에게 에반은 원래 진실을 말하려 했다. 그러나 코너의 어머니 '신시아'의 "네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말을 듣고 에반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과 코너가 친구였다고. 코너의 부모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해주고, 또 중요하게 여겨주니, 누군가의 관심을 갈구하던 에반은 덜컥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반은 계속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이어가고, 그 과정에서 코너라는 인물은 재구성된다. 에반의 거짓말로 새롭게 탄생한 코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코너 가족은 아픔에서 회복하고, 이를 지켜본 에반은 거짓말을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자살한 코너를 추모하고, 유사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코너 프로젝트'가 조직된다. 비록 오해와 거짓말에서 비롯된 상황이지만, 코너 가족도 회복되고 에반도 조금씩 성장한다.
물론 진실이 밝혀지긴 한다. 그로써 누군간 에반에게 실망하고, 코너 가족은 혼란을 경험한다. 그러나 위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이전에 따뜻한 위로를 경험한 이들은 금세 안정을 찾는다. 에반은 성장했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다. 코너 가족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회복하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가족 간 유대감을 다졌다. 그렇게 무대에는 위로가 남는다.
이런 큰 흐름 속에서 필자는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일단 다루는 소재가 현대적이다. 대형 뮤지컬이 흔히 다루는 거시적인 주제가 아닌, 개인과 가족이라는 미시적인 주제를 이야기한다. 표현 기법도 현대적이다. 스크린과 LED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대 뒤에 빼곡하게 놓인 스크린들은 시시각각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으로 변하며 극의 전개를 보조한다. 여태 이런 기법을 선보인 뮤지컬이 있었던가, 한 번씩 감탄이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