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의 떠오르는 젊은 명장으로 주목받던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지도자 커리어에서 첫 위기를 맞이했다. 이정효 감독이 이끄는 광주는 지난 4월 1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7라운드에서 전북 현대에 1-2로 패했다. 이로써 광주는 충격의 5연패 수렁에 빠졌다.
광주는 올시즌 개막 이후 FC서울(2-0)과 강원FC(4-2)를 상대로 쾌조의 2연승을 달리며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했다. 하지만 3라운드 포항전(0-1) 패배를 시작으로 대구(1-2), 인천(2-3) 김천(1-2)에 이어 전북까지 5경기 연속 1골 차 패배를 거듭하며 순식간에 8위까지 내려앉았다. 5연패는 이정효 감독의 커리어 최다 연패 기록이기도 하다.
비상도 추락도 드라마틱하다. 이정효 감독은 지난 2022년 광주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첫해부터 팀을 K리그2 우승으로 이끌며 1부로 승격시켰다. 지난 2023년에는 승격팀인 광주를 울산과 포항에 이어 리그 3위에 올려놓으며 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등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K리그1 기준 구단 예산과 선수단 연봉 최하위 팀이 이뤄낸 대반전이었기에 더욱 극적이었다.
이정효 감독은 현역 시절 수비수로 부산 대우 로얄즈-아이파크(1998~2008)에서만 선수생활을 보낸 '원클럽맨'이었지만 인지도 높은 스타급 플레이어라고는 하기는 어려웠고 국가대표 경험도 없었다. 이 감독은 은퇴 이후 모교인 아주대학교 코치와 감독, K리그 전남-광주-성남-제주 등에서 코치직을 역임하며 10여 년 넘게 차근차근 지도자 경험을 쌓았고, 마침내 광주에서 첫 감독생활을 시작했다.
이 감독은 부임 이후 승격과 강등을 오르내리며 성적도 인기도 그저그런 지방의 약팀에 불과하던 광주를 단숨에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흔히 약팀은 선수비 후역습을 해야 한다는 뻔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정효볼'은 그라운드 전방위에서의 압박과 빠른 공수 전환, 높은 볼 점유율과 빌드업 바탕으로 한 능동적인 전술철학이 K리그와 광주같은 구단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선수들의 이름값이 떨어지는 광주가 지난 2년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정효 감독의 전술적 역량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정효 감독은 비시즌에는 사비로 유럽까지 가서 경기를 직관하며 현대축구의 트렌드를 파악할 만큼 공부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이 감독은 김기동 FC서울 감독, 윤정환 강원FC 감독 등도 함께 최근 K리그에서 가장 전술적 역량이 뛰어난 지도자로 주목받았다.
또한 이정효 감독은 축구 못지않게 거침없는 언행으로도 K리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상호 존중과 선후배간의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축구 문화에서 상대팀에게 "저런 축구를 하는 팀에게 졌다는 게 분하다", "그 감독의 연봉이 얼만지 궁금하다"는 등 파격적인 발언이나 선을 넘은 '도발'도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경기중 자신의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약속된 플레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웃옷을 집어던지고 불호령을 내리기도 한다.
이런 이정효 감독의 쇼맨십을 두고 축구계에서는 '무례하다'며 호불호가 엇갈리지만, 기존의 틀에 박힌 K리그 감독들과는 차별화된 볼거리를 선사하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팬들도 많았다. 독설과 쇼맨십으로 유명한 주제 무리뉴 감독을 빗대어 'K리그판 무리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감독들은 성적이 잘 나올 때는 개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오히려 그만큼 역풍을 맞기도 쉽다는 것이다. 원조 무리뉴 감독 역시 한창 우승을 밥먹듯이 차지하던 시절에는 본인을 '스페셜 원'이라고 자부하며 독설과 기행으로 구설수를 일으켜도 명장으로 인정받았지만, 최근 들어 가는 팀마다 경질을 거듭하면서 평가가 크게 하락한 바 있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차세대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까지 언급될 정도로 극찬을 받던 이정효 감독이 이렇게 하루 아침에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사실 5연패 기간에도 내용 면에서는 모두 한 골 차 박빙의 승부였던 데서 보듯 운이 따르지 않은 장면이 많았다.
첫 패배인 포항전에서 후반전 추가시간인 93분 정재희에게 극장골을 내준 것을 비롯하여 인천전에서는 주전 골키퍼 김경민, 김천전에서는 주장 안영규가 연이어 퇴장을 당하며 수적열세에 몰려야 했던 악재가 있었다. 전북전에서는 백업 골키퍼였던 이준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뼈아픈 실점을 내주면서 광주의 얇은 선수층이라는 문제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물론 최종결과는 감독의 책임이라고 하지만, 감독이 통제하기 힘는 변수들이 최근 경기마다 속출하고 있다는 것은 불운한 대목이었다.
지난해 K리그1에서 광주의 돌풍으로 이정효 감독의 전술이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상대팀들도 이제 충분히 파훼법에 대한 분석이 끝난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5연패 기간 동안 경기를 거듭하면서 광주의 점유율이 점차 떨어지고 후반으로 갈수록 밀리는 양상을 드러냈다는 공통점이 이를 증명한다. 여기에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카타르 아시안컵에 엄지성, 변준수, 포포비치 등 주축 선수들이 참가하게 되면서 추가적인 전력누수도 발생했다.
한편으로 연패가 거듭되면서 이정효 감독 특유의 자신감과 독설에 대한 반응도 점차 싸늘해지고 있다. 전북전을 앞두고 이 감독은 "광주의 축구는 항상 같을 것이다. 이정효라는 캐릭터를 버리면 광주 축구는 사라질 것"이라며 최근의 부진에도 자신의 축구철학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또한 선수층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날 또다시 출전명단에서 제외된 일바니아 국가대표 출신 외국인 선수 아사니를 두고 "실력이 없어서 못 나오는 거다. 현재 몸 상태가 준비가 안 됐다. 10연패를 하더라도 지금 상태로는 경기에 뛸 수 없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여기까지만 해도 좋았을 텐데 "아사니가 왜 대표팀 선수인지 의문이다. 알바니아 대표팀 감독도 아사니의 발탁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또다시 선을 넘은 말까지 쏟아내고 말았다. 소속팀 선수로서의 프로의식 부족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굳이 자신의 영역도 아닌 대표팀 발탁 문제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정작 이정효 감독의 광주는 올시즌 무승의 부진에 빠져있던 데다 감독자리까지 공석인 전북에게마저 시즌 첫 승의 제물이 되며 또다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결과만이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리그 꼴찌를 다투는 전북보다 크게 우세할 것이 없는 경기력을 보이면서 이정효 감독의 전술적 고집에 대한 의구심은 더 높아졌다.
경기 후 이정효 감독은 "가장 개선해야 할 것은 감독 본인"이라며 남탓이 아닌 자기 반성으로 책임을 돌렸다. 이 감독은 이날 몇몇 선수들의 부진과 결정적 실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한편으로 이 감독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더 신나게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한다"며 개선을 다짐했다.
현재 광주의 상황은 이정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래 최대의 시련이라고 할 만하다. 다행히 수원FC와의 27일 경기까지 약 2주간의 기간이 있어서 팀 재정비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벌게 됐다. 벼랑끝에 몰린 K-무리뉴는 과연 광주의 위기에 어떤 해법을 들고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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