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1980 >을 연출한 강승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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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년간 영화 <테러리스트> <실미도> <왕의 남자> <사도> 등의 미술을 책임졌던 강승용 감독이 장편 영화 연출로 데뷔, 지난 27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소재는 다름 아닌 5.18 항쟁이다. 역사 및 시대극을 현대 영화로 소환하는 데에 헌신해 온 그는 "어떤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닌 약간의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이라며 연출의 변을 밝혔다.
한국전쟁 때 공산당을 피해 피난 온 후 광주에 정착해 중국 음식점을 차린 철수 할아버지(강신일), 그의 며느리 철수 엄마(김규리)와 세입자 영희 엄마(한수연) 등이 광주의 '그날'을 경험하며 벌어지는 비극. 영화 < 1980 >은 광주 소시민들이 비극의 한복판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정서적 변화를 겪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 유족, 피난민의 사연이 만나다
중국 음식점 사장과 그의 3대손이 등장한다는 설정은 강 감독이 평소 알고 지낸 지인의 사연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손주 철수와 그의 단짝 영희의 시선으로 어른들을 바라본다는 설정은 항쟁 당시 외신기자가 목숨 걸고 찍은 사진으로 잘 알려진 '꼬마상주' 조천호씨가 모티브가 됐다. 강승용 감독은 조천호씨 및 모친을 접촉했고,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시나리오를 완성해갔다고 한다.
"현대물보단 시대극을 많이 하다 보니 지방 촬영을 많이 다니곤 했다. 시대극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주로 전라도였는데 그 인연으로 현지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분이 생겼다.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쪽배를 타고 와 광주로 피난했고,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다. 그분이 겪은 4.19, 5.16 등 한국의 현대사 이야길 듣다가 언젠가 시나리오를 써보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지금에야 < 1980 >으로 개봉했지만 원래 제목이 <화평반점>이었다. 그리고 애초엔 극영화가 아닌 뮤지컬 영화로 구상했었다.
조천호씨와는 통화를 몇 번했고, 그의 어머님은 직접 찾아뵈었다. 그간 큰일을 겪으셔서 사람들 접촉을 꺼려하시더라. 사찰을 당한 적도 있고, 아무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분들을 만나려 했을 테고 상처도 받으셨을 것이라 생각했다. 통화하면서 마음을 열어주셨고 그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전남도청에 갔다가 살아나오신 분들, 다른 유족분들 이야기도 들었다. 공통적으로 5월 27일 이후 2, 3년이 더 무서웠다더라. 큰 트라우마가 남아서 군인만 봐도, 국방색만 봐도 큰 공포였다고 한다."
그간 5.18을 다룬 여러 형태의 영화가 있었지만 강 감독은 "무엇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중심이었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바라보거나 어떤 객관적 시점이 아닌 내부에서 직접 겪고 말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그는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유족분들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구했다. 그분들께서 격려해주셔서 지금의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