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송 감독
CJ ENM
오는 6일 개봉을 앞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이다. 신인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분(작품상, 각본상)에 올라 놀라움을 안겼다. 지난 달 29일 화제의 주인공인 셀린 송 감독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선댄스 영화제부터 시작해서 아카데미까지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1년여 동안 한 영화 하나로 겪을 수 있는 과정을 A부터 Z까지 학습하고 한국을 마지막으로 밟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드디어 한국에서 개봉, 기대 반 설렘 반"
-전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한국에서 개봉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이제 오스카 레이스만 남았다.
"한국에서 언제 개봉하나 기대되었다. 인연이란 말을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지만 외국은 다르다. 그래서 '인연'이란 영화의 주제가 크게 와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래서 한국 반응은 예상 못 하겠다. 열린 마음으로 캐릭터에 이입해 즐기면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제목을 <패스트 라이브즈>라고 지은 이유가 있을까.
"저는 누구나 두고 온 인생(전생)이 있다고 믿는다. 살면서 시공간을 이동하고 나이도 먹고 이사도 다닌다. 예를 들면 변호사의 삶을 버리고 현재 셰프가 되었다면, 변호사의 삶은 전생이 되어 그 시절의 일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부산 살다가 서울로 이사 가면 부산 살았던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된다. 보통의 인생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포용하는 제목으로 정했다."
-<씨받이> 시나리오 작가인 큰아버지(송길한), <넘버3>, <세기말> 감독인 아버지(송능한)에 이은 영화인 가족이다. 10대 때 캐나다로 이주해 뉴욕으로 건너가 극작가로 활동하다 영화감독이 됐는데.
"아버지의 조언은 따로 받지 않았다. 인생 자체가 조언이다. 부모님의 조언이라기보다는 제 인생 자체가 부모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아버지 영화가 <넘버11>로 되어 있는 이유를 많이 물어보더라. 아버지 영화를 오마주 하고 싶어 찾아보니 넘버10까지 (영화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웃음)
한국에 오더라도 영화인과 만날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촬영했던 시간이 무척 소중했다. 조명 감독이 아버지의 강의를 듣던 학생이었다. 한국 영화계를 경험하게 되어 재미있었고 뜻깊었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연'이다. 인연의 시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는 셋이 바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관객을 그 자리에 초대하고 (무슨 사이일까) 의문을 유발하며 탐정이 되어보길 부추긴다. 해외에서는 인연에 대해 잘 몰라서 단어를 설명해 주어야 했다. 해성과 나영의 관계는 첫사랑, 친구, 연인도 아니다. 친구는 맞지만 사귄 사이는 아니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 대체 이 관계를 뭐라고 정의해야 하냐, 그걸 해석하는 단어가 인연이었다. 아서와 해성의 사이도 마찬가지다. 나영을 사이에 둔 어떤 관계다. 적도 친구도 남도 아닌, 한 단어로 정해주어야 했다. 그래서 영화에 인연의 뜻을 모르는 관객을 위해 친절히 설명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 거다."
-북미나 세계적인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 한국과 감성과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호기심일까.
"북미에서 공부하고 자랐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봐서는) 이민 이야기 같지만 나이 먹고, 다른 언어도 배우고, 이사를 가거나 직장을 옮기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민자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 세계 영화제를 돌면서 수많은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다(웃음). 한 아일랜드의 관객은 글래스고에서 사는데 더블린에 두고 온 연인이 생각난다며 울더라. 어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니 연인에게 고마움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함께 해서 행복하고 같이 늙어가는게 기대된다는 사람,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서 자주 못 보던 상대가 문득 생각나서 비행기 티켓을 샀다는 관객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번 생은 아니라며 관계를 정리한 사람도 있었다(웃음).
"어른과 아이의 모순이 담긴 얼굴 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