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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했던 의대생, 무엇이 그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무대 위에 구현된 최인호의 <겨울나그네>

24.02.23 11:03최종업데이트24.02.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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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겨울나그네> 포스터 ⓒ 에이콤


1997년, 한국 현대 문학의 거장이라 평가받는 최인호 작가의 장편소설 <겨울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당시 예술의전당 창립 1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뮤지컬 <겨울나그네>는 2005년 재연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무렵, 무려 18년이란 시간이 흐른 2023년 겨울 삼연으로 돌아왔다.

<겨울나그네>는 아이돌 스타를 대거 캐스팅하며 개막 전부터 대중음악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소녀를 단숨에 사랑할 정도로 순수한 청년이었으나, 아버지의 죽음과 출생의 비밀로 점점 어둠을 맛보게 되는 '한민우' 역에 이창섭, 인성, MJ, 렌이 캐스팅되었으며, 그런 '한민우'의 친한 형 '박현태'를 세븐, 려욱, 진진이 연기한다. 외에도 주아, 서영주, 서범석 등 실력파 배우들이 캐스팅보드에 이름을 올렸다. <겨울나그네>는 25일까지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낙인 이론으로 본 주인공 한민우의 삶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는 주인공 '한민우'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자. 그는 의과대학에 다닐 만큼 똑똑하고, 캠퍼스에서 짧게 마주친 '정다혜'를 단숨에 사랑할 정도로 순수한 인물이다. 장래가 기대되는 청년이었지만, 실제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사업의 실패한 민우의 아버지는 채권자들에게 압박을 받는 신세가 되었고, 지병이 악화되며 끝내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의 병상까지 찾아온 채권자를 보고 흥분한 민우는 폭력을 휘두르고, 채권자 한 명이 민우에 의해 사망한다. 설상가상으로 민우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바로 자신이 아버지가 외도를 통해 낳은 자식이라는 것. 절망에 빠진 민우는 마약 밀매를 하는 술집의 사장인 이모 '로라킴'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마약 밀매에 손을 댄다.

파란만장할 것 같았던 민우의 삶이 점점 비참해지는 과정을 보며 나는 '낙인 이론'을 떠올렸다. 낙인 이론은 일탈 또는 범죄는 행위자의 내적 특성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의 낙인, 즉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만들어진다고 보는 이론이다. 주변에서 누군가를 일탈자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앞으로도 일탈을 계속 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이런 사회적 낙인과 불이익으로 인해 실제 일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낙인 이론은 민우의 사례를 설명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아버지가 떠난 이후 민우를 향한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지켜줄 가족이 없다'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을 잃은 민우는 점점 소외되었고, 아버지의 채권자를 폭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주위의 시선은 더 따가워졌다. 특히 의사가 된 대학 동기들은 민우를 두고 '애초에 우리와 맞지 않았다'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 가운데 민우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마약 밀매에 손을 대고, 거래 현장에서 선두에 서며, 급기야 마약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순수한 청년이 이토록 타락하기까지, 과연 무엇이 민우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과 함께 낙인 이론을 떠올려본다.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면

캠퍼스에서 마주친 다혜의 집을 찾아간 민우는 그곳에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듣게 된다. 이후 둘은 한참이 지나서 '겨울나그네'를 다시 듣는다. 이미 민우의 삶은 얼룩져버렸지만, 다혜를 찾아가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이때 레스토랑 측에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연주해줄 것을 요청한다. '겨울나그네'를 두고 노랫말이 슬프다는 민우에게 다혜가 나지막한 한 마디를 건넨다.

"차갑고 슬픈 노랫말 한가운데에도 따뜻함은 있어요."

'겨울나그네'에 대한 다혜의 말은 민우의 삶에도 적용 가능하다. 민우의 삶은 "차갑고 슬픈 노랫말"이 계속 연주되는 듯했으나, 가족이 생긴 순간부터 민우는 사뭇 달라진다. 민우는 술집에서 일하는 여인 '제니'와 함께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 지켜야 할 가족이 생겼다며 "따뜻함"을 발견한 민우는 마지막 거래를 통해 돈을 벌어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을 다짐한다.

그 따뜻함이 오래 가면 좋으련만, 결말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마지막 거래 현장에서 민우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가족을 지키며 새로운 삶을 살겠다던 평범한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민우가 차갑고 슬픈 노랫말 한가운데에서 따뜻함을 발견했다는 데에서 위안을 얻는다. 잠시나마 작은 소망을 품고 희망을 노래했으니.
공연 뮤지컬 겨울나그네 에이콤 한전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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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행정학과 정치외교학, 사회학을 수학했다. 현재까지 뮤지컬, 야구, 농구, 그리고 여행을 취미로 삼는 데 성공했다. 에세이 『여행자로 살고 싶습니다』를 썼다. │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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