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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사라지고 궐 안 전쟁만... 용두사미 된 '고려거란전쟁'

[리뷰] KBS 2TV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24.02.19 14:29최종업데이트24.02.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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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렸던 <고려거란전쟁>이 1주 휴방을 거쳐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없었다. 2월 18일 방송된 KBS 2TV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 김한솔 서용수) 26회에서는 무신들의 쿠데타로 혼돈에 빠진 고려의 상황이 긴박하게 펼쳐졌다.
 
김훈(류성현)과 최질(주석태)이 이끄는 반란군은 황궁으로 진입하여 현종(김동준)과 대신들이 모여있는 대전을 포위한다. 현종은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서북면과 동북면에 있는 군사들을 개경으로 소환하도록 지시한다. 하지만 박진(이재용)은 원정황후(이시아)를 협박하여 근왕군에게 회군하라는 교지를 내리게 한다.
 
유방(정호빈)이 이끌던 서북면 군대는 황후의 교지를 받고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은 진실을 알 수 없다며 '제2의 강조'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일단 회군을 결정한다. 하지만 현종의 특명을 받은 강감찬(최수종)은 교지를 찢어버린 뒤 동북면 군대를 이끌고 개경으로의 진군을 계속한다.
 
박진은 재차 현종의 목숨을 조건으로 원정황후를 위협하여 반란을 인정하고 정전에 진입하라는 교지를 받아낸다. 이어 박진은 김훈과 최질에게 강감찬의 동북면 근왕군이 도착하기 전에 대전을 장악하고 현종을 확보해야 한다고 독촉한다. 망설이던 김훈은 현종의 호위대를 이끌던 이현에게 마지막으로 항복을 권유하지만 거절당한다. 결국 김훈은 공격을 명령하고, 이현과 호위대는 장렬하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한다.

현종은 반란군이 대전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에서도 "황제를 시해하고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으면 나를 베어보거라"고 외치며 굴복을 거부한다. 그러자 최질은 사로잡은 신하들의 목숨을 인질로 재차 현종을 협박한다.
 
강감찬이 이끄는 동북면 근왕군이 마침내 개경에 도착한다. 하지만 성문이 열리자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뜻밖에도 현종과 반란군이 함께 등장한 모습이었다. 결국 무신들의 요구를 수용한 현종은, 난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하며 강감찬과 동북면 군대에게 임지로 돌아갈 것을 지시한다. 어쩔 수 없이 동북면 군대는 개경에서 회군하지만, 강감찬은 현종을 지키기 위하여 반란군들이 장악한 개경에 남겠다고 자청한다.
 
김훈과 최질이 이끄는 무신세력은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조정을 장악한다. 박진은 원성황후 김씨(하승리)와 김은부(조승연)을 개경 밖으로 추방시킨 뒤 은밀하게 제거하려고 한다. 현종은 원정황후가 반란군과 결탁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크게 분노한다. 원정왕후는 눈물을 흘리며 "폐하를 지키기 위하여 한 일"이라고 해명하지만, 실망한 현종은 "내가 알던 그 현명한 황후는 어디로 갔냐"고 한탄하며 등을 돌린다.
 
점차 권력에 취한 최질과 무신 세력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최질은 급기야 김훈마저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고 권력을 독점하는가 하면, 이의를 제기하던 강감찬을 폭행하고 궁녀들을 희롱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현종은 분노를 참아가며 일단 조정이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최질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준다.
 
강감찬과 재상들은 대책을 논의하다가 무신세력의 배후에서 박진이 두뇌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감찬은 박진의 어깨에 난 상처를 확인하고 바로 그가 과거 현종을 암살하려고 했던 호족이었다는 정체를 밝혀내면서 반격을 예고했다.
 
무리한 설정과 억지스러운 각색

 
 KBS 2TV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한 장면.

KBS 2TV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한 장면. ⓒ KBS2

 
에피소드의 배경이 된 '김훈-최질의 난'은 2차와 3차 고려거란전쟁 사이의 전간기였던 1014년 11월에 벌어져서 이듬해까지 이어진 무신 정변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김훈과 최질은 전장에서 공훈을 세워 상장군의 자리까지 오른 능력있는 무장이었지만, 문신과 무신의 차별이 존재했던 고려에서 승진에 불이익을 받게되자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전란으로 재정이 곤궁했던 고려 조정에서는 장연우와 황보유의의 건의로, 무장들에게 지급되던 토지인 영업전(永業田)을 회수하여 관리들의 녹봉을 충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것이 결정적인 방아쇠가 되어 그동안 쌓여있던 무신들의 분노가 폭발한 사건이 바로 쿠데타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드라마가 무리한 설정과 억지스러운 각색으로 오히려 이야기의 개연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데 있다. '김훈-최질의 난'은 실제 역사에서는 고려사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현종의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과오 중 하나로 꼽힌다. 거란과 대치중인 전시 상황에서 국가가 군인들에게 차별 대우를 하고, 심지어 월급까지 함부로 박탈하려했다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잘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조선말에 일어난 임오군란(壬午軍亂,1882)의 사례와도 흡사하다.
 
드라마는 영업전 회수 사건은 일종의 명분에 불과하고 이미 김훈과 최질이 어차피 반란을 일으킬 타이밍만 엿보고 있었던 상황으로 해석했다. 반면 극중 선역으로 설정된 현종과 문신들의 과오는 철저히 미화된다. 현종의 지시로 영업전 회수 계획을 고안한 장연우와 황보유의는, 극중에서 유능하고 충직한 신하임에도 쿠데타에 의하여 억울하게 희생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또한 이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책을 제시했음에도, 김훈과 최질은 정작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반발하며 뛰쳐나간 뒤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묘사됐다.
 
여기서 드라마는 '김훈-최질의 난'이 일어나야만 했던 극적 효과를 부각시키기기 위하여 박진이라는 가상 인물을 추가했다. 박진의 모티브가 된 것은, 2차 여요전쟁 당시 수도를 떠나 지방으로 몽진한 국왕 현종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위협했다는 한 향리(고려의 지방 호족)의 실제 일화를 각색하여 만들어낸 캐릭터다.
 
극중에서 박진은 여요전쟁에 참전했던 두 아들을 잃은 후 고려 황실에 원한을 품고 복수를 꿈꾸게 되는 인물로 설정됐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개연성있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차 여요전쟁 파트에서 퇴장했어야 할 박진이 살아남아 개경까지 올라오더니 끊임없이 고려 황실을 위협하는 '흑막'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박진은 이 드라마의 주요 갈등 구도 중 하나인 '현종과 지방 호족의 대립'을 상징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엄연히 정통사극을 표방한 <고려거란전쟁>에서 실존이 아닌 가상인물이자, 극중에서도 지방의 중소 호족에 불과한 박진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은, 극의 흐름에 맞지 않고 설득력도 떨어진다는 평가다.
 
 KBS 2TV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한 장면.

KBS 2TV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 한 장면. ⓒ KBS2

 
특히 원정황후를 향한 왜곡 문제도 여전하다. 실제 역사에서 원정황후는 현종이 가장 사랑한 아내이자 정비였고, 사후에까지 큰 예우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원정황후를 후반부로 갈수록 현종의 개혁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빌런'이자 비호감에 가까운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다.
 
원정황후는 극중에서 원성왕후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온갖 음모를 꾸미는가 하면, 급기야는 (박진의 협박 때문이라고 하지만) 반란에 가담해 현종의 뒤통수를 치는 이미지로 전락했다. 

본래 32부작으로 예정된 <고려거란전쟁>은 이제 6회밖에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할 3차여요전쟁과 귀주대첩 파트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2차여요전쟁 파트 이후 드라마 전체의 1/3에 이르는 분량이 사실상 고려 내부의 권력암투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고려거란전쟁'은 설 연휴 한 주 결방을 택하고 재정비 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시청자들이 지적한 문제점에 있어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초심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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