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의 한 장면.
tvN STORY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길림성 만주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에는 지금도 윤동주 생가가 남아있지만 당국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명동촌의 지명은 '동방의 나라, 한반도를 밝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당시 만주 북간도로 이주한 조선인 지식인들이 민족의 미래를 도모하자는 의미로 세운 마을이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던 신식학교에 기독교 중심의 공동체라는 교육적-종교적 특성으로 인하여, 명동촌은 사상적으로 깨어있는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윤동주의 삶과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모태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윤동주는 정이 많고 섬세하며 친구들을 잘 챙기는 이타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손재주가 좋은 윤동주는 축구부원인 친구들의 유니폼을 본인이 모두 가져다가 직접 재봉질을 해줬다는 일화도 있다.
1934년 겨울, 17세의 윤동주에게 인생의 첫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윤동주의 사촌이자 평생의 절친이었던 송몽규가 중학생 신분으로 일약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룬 것. 당시 문학도들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공식적인 문학가로 인정받는 등용문의 역할을 했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둘도 없는 절친이자 같이 문학을 공부한 학문적 동지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윤동주는 매사 자신보다 앞서나가는 친구에게 은근한 열등감과 경쟁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윤동주는 이때부터 시인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는 송몽규의 당선소식을 듣고 무척 자극을 받았는지, 약 한 달여 만에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 등 무려 세 편의 시를 동시에 완성한다.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하나같이 진중하고 무거운 주제는, 당시 한창 청소년기를 지나던 윤동주가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자답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1930년대는 일본의 만주침략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윤동주가 살던 북간도 일대는 조선인들의 항일무장투쟁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청소년기의 윤동주가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과 일제의 잔혹함을 두 눈으로 생생히 목격한 것도 그의 시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송몽규의 등단 이후부터 윤동주는 자신이 쓰는 시에 날짜를 적기 시작하는 특징을 보인다. 예술가들이 본인의 작품을 완성한 후 사인을 하는 것처럼, 윤동주 역시 이 무렵부터 본격적인 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책임감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동주의 부친은 아들이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여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를 원했다. 문학도가 되고 싶었던 윤동주는 "문과 졸업하면 신문기자밖에 더 되냐. 시는 의사가 돼서도 쓸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꾸짖는 부친과 매일같이 충돌하며 부자 갈등이 매우 심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윤동주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보다 못한 윤동주의 할아버지가 중재에 나서면서 문과 진학을 허락받았다.
1938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의 전신) 문과에 합격하여 경성(서울)으로 유학을 오게 된다. 시골 출신이었던 윤동주에게 다양한 세상과 학문을 접할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대학 입학으로 처음으로 쓴 시 '새로운 길'이라는 작품에서는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라는 표현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신입생의 풋풋함과 설렘을 느낄수 있다.
윤동주는 절친인 송몽규-강처중과 함께 이른바 '핀슨홀(Pinson Hall, 연세대 기숙사) 삼인방'을 형성하여 함께 대학생활을 보냈다. 비록 엄혹했던 시대였지만, 윤동주과 친구들의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청춘의 화양연화같은 시기였을 것이다.
이 시기의 윤동주는 학업에 충실하면서도 시 쓰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윤동주는 '새로운 길' 등 8편의 시와 5편의 동시, 산문 '달을 쏘다' 등을 집필하며 활발하게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학교 후배이자 절친한 문학적 동료였던 정병욱은 이 시기의 윤동주를 회고하며 "빼어난 미남이자 남을 헐뜯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또한 강처중은 "윤동주는 별로 말주변도 사귐성도 없었지만 그의 방은 언제나 친구들로 가득차있었다"며 사람을 끄는 윤동주의 매력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