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국 카타르가 2회 연속 정상에 오르며 '최후의 승자'에 등극했다. 1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다인 지역의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홈팀 카타르는 '에이스' 아크람 아피프(알사드)의 페널티킥 해트트릭이라는 진기록을 앞세워 3-1로 승리했다.
이로써 카타르는 직전 2019년 UAE 대회에 이어 아시안컵 2연패에 성공했다. 4년 전에는 도움왕을 차지했던 아피프는 올해는 8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지난 대회의 우승주역 알모에즈 알리에 이어 한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휩쓴 또 한명의 카타르 선수가 됐다.
카타르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월드컵 본선 출전은 고사하고 아시안컵에서도 8강이 최고 성적이었던 팀이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 개최권을 따내면서 막대한 투자와 귀화 정책으로 전력이 급상승하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카타르는 4년 전 UAE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을 모두 격파하고 조별리그부터 7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때보다 전력이 악해졌다는 평가를 받은 데다 지난해 12월 아시안컵 개막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사령탑이 카를로스 케이로스(포르투갈)에서 틴틴 마르케스 감독(스페인)으로 갑자기 바뀌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타르는 A조에서 타지키스탄-중국-레바논을 모두 격파하고 3연승으로 일찌감치 순조롭게 조 1위를 확정지었다. 토너먼트에서는 팔레스타인(2-1), 우즈베키스탄(1-1, 승부차기 3-2), 이란(3-2)에 이어 결승에서는 한국을 이기고 올라온 요르단마저 격파했다.
매 경기 1골 차 이내 박빙의 접전에서 보듯, 경기력은 확실히 4년 전 만큼 압도적이지는 못했고 위기도 많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강호들이 일찍 탈락하면서 이란을 제외하면 우승후보급 팀들을 거의 만나지 않은 대진운, 개최국의 홈 어드밴티지와 심판 판정 등의 행운도 겹치면서 다시 한번 정상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본래 중국에서 열리기로 했던 이번 대회는 코로나19 팬데믹 문제로 중국이 개최를 포기하면서 카타르가 한국과 경쟁을 벌였다. 카타르가 개최권을 획득한 것은 '신의 한수'가 됐다. 결승전에서 카타르가 넣은 3골이 하필 전부 패널티킥이라는 것도 국내외 축구 팬들 사이에서 홈 어드밴티지와 판정 논란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카타르는 2022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개최국 역사상 최초로 조별리그 3전 전패로 탈락한 아픔도 씻어내며 아시아 축구의 신흥강호로서 위상을 다졌다. 통산 2회 우승은 일본(4회)과 이란-사우디(3회)에 이어 한국과 함께 공동 4위의 기록이다.
2023년 아시안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안컵 우승 경험(쿠웨이트, 이스라엘 제외)이 있는 전통의 아시아 5강(한국, 일본, 호주, 이란, 사우디)중 단 한 팀도 결승에 오르지 못한 것은 사상 최초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우승팀 카타르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58위, 요르단은 87위에 불과했다. 카타르는 1년 전 역시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했던 월드컵 본선에서 3전 전패의 망신을 당했고, 요르단은 아예 월드컵은 고사하고 아시안컵 결승 진출도 이번이 최초였다.
반면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를 대표해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한국(23위)과 일본(17위)은 각각 4강과 8강에서 졸전 끝에 탈락하는 망신을 당하며 후폭풍이 상당하다. 아시안컵에서는 최근 2회 연속 8강에 올랐던 중국(79위) 역시 최악의 졸전 끝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동아시아팀들에게는 유독 잔혹했던 대회가 되고 말았다.
이번 대회는 '추가시간의 드라마'가 유난히 많았던 대회이기도 했다. 한국은 사우디와의 16강전(99분), 호주와의 8강전(96분)에서 모두 0-1로 끌려가다가 후반 종료직전 추가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하며 승부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이란이 일본에 역전승을 거둔 준결승전도 96분에 PK가 터졌고, 승부차기까지 갔던 타지키스탄과 UAE의 16강전에서는 95분에 동점골이 나왔다. 최근 축구계에서 인플레이 시간 확대를 강조하는 추세 속에서 추가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경기 막판의 집중력이 승부의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또한 '언더독의 반란'이 유난히 속출했던 것은 최근 아시아 축구의 상향평준화 추세를 증명한 장면이다. 유럽파만 참가국 중 최다인 20명에 이르렀던 아시아 FIFA 랭킹 1위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이라크(63위)에, 준결승에게 이란(21위)에게 덜미를 잡혔다. 타지키스탄(106회)은 파울루 벤투 전 한국대표팀 감독이 이끌던 UAE(64위)를 격파하고 첫 출전에 8강 신화라는 이변을 이뤄냈다.
그 중에서도 이변의 최대 희생양은 역시 대한민국일 것이다. 한국은 FIFA 랭킹 130위의 말레이시아에게 무려 3골이나 내주며 조별리그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고, 조별리그와 4강전에서 두 차례나 만난 요르단에게는 1무 1패로 밀렸다. 특히 준결승전 패배는 요르단과의 역대 전적 최초의 패배였고, 유효슈팅 제로(0)라는 기록도 한국축구의 아시안컵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한국축구는 이번 아시안컵에서 또다시 우승에 실패하며 또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한국은 아시안컵 초창기인 1956, 1960년 대회에서 2회 연속 정상에 올랐지만 이후 더 이상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는 역대 아시안컵 우승국 중에서 최장기간 우승 실패 기록이다. 다음 대회가 열리는 2027년이면 벌써 67년째가 된다. 차기 개최지 역시 사우디아라비아로, UAE-카타르에 이어 3회 연속 중동에서 대회가 열리게 되어 중동에 고전했던 한국으로서는 앞으로도 우승도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손흥민-김민재-황희찬-이강인 등 역대 최고의 전력으로 평가받으며 그야말로 '우승의 적기'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정작 경기력은 대회 내내 기대 이하였다. 4강까지 간신히 올라오기는 했지만, 한 수 아래로 꼽힌 요르단에게 참사에 가까운 완패를 당하면서 용두사미로 마감한 모양새가 됐다. 특히 참사의 원흉으로 꼽히는 사령탑 위르겐 클린스만은 전술부재와 직업윤리 등에서 비판을 받으며 현재 경질 여론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감독 개인의 역량에 대한 비핀과는 별개로, 한국축구의 아시안컵 무관이 이렇게까지 길어진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한국 축구는 2년 주기로 번갈아 열리는 월드컵과 올림픽 일정을 최우선으로 대표팀이 운영되는 구조다. 보통 차기 대회를 목표로 약 2년에서 4년의 준비과정을 거치며 감독의 계약도 이에 맞춰 이루어진다.
반면 대륙별 국가대항전인 아시안컵의 비중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번 대회 이전까지 아시안컵은 월드컵 본선과 약 반 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개최됐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월드컵 본선이 끝나면 대회 성과와는 별개로 항상 감독이 교체되곤 했으며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은 전무했다.
이러다보니 아시안컵은 항상 새로운 대표팀 감독들의 '첫 시험장' 혹은 '중간평가 '정도의 무대로 의미가 퇴색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조 본프레레, 고 핌 베어벡, 조광래, 울리 슈틸리케, 파울루 벤투 감독 등은 모두 사령탑에 부임한지 6개월, 1년 미만의 짧은 시간에 팀을 만들어 처음 도전한 메이저대회가 바로 아시안컵이었다.
클린스만의 경우, 그나마 대회 개최지 변경으로 부임 이후 1년이라는 비교적 넉넉한 준비기간이 주어졌지만, 감독의 근무태만과 전술적 무능으로 인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중국의 포기로 모처럼 홈에서 아시안컵을 개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국제 외교력과 준비 부족으로 카타르에 밀린 것도 뼈 아팠다.
차범근-박지성에 이어 손흥민 같이 한국축구의 전설적인 선수들조차 아시안컵 우승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는 것은,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자부심에 오점을 남긴다. 그런데 아시안컵을 경험한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시안컵이 결코 쉬운 무대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선수들의 높은 이름값만으로 우승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번 대회 한국과 일본의 몰락이 잘 증명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비해 주목도는 낮지만, 원정 텃세, 부상, 심판판정 등 여러 가지 변수를 극복하려면, 철저한 연구와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축구가 아시안컵을 월드컵이나 올림픽 만큼이나 준비하고 임한 적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실패를 거듭하는데도 문제의 원인을 찾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100년이 흘러도 아시안컵 우승은 그저 희망사항에 그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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