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플랜 75 > 스틸 이미지.
찬란
영화 < 플랜 75 >는 극 중 고령자의 죽음을 나라가 지원하는 프로그램 이름 '플랜 75'를 그대로 제목화했다. 제75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 부문에 특별언급되었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일본 출품작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상도 많이 탔다. 한마디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말인데, 설정이 너무 현실적이면서도 생각할수록 무시무시한 면이 있다.
초고령화 문제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야말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초고속으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아니 진입했다. 와중에 고령자 정책, 청년 정책, 출산 정책 뭐 하나라도 제대로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플랜 75'가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힘없고 돈 없는 고령자가 대상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수직상승하면서 수명도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인 고령자의 노후는 그리 밝지 않다. 반면 물가, 집값, 세금 등 모든 게 오르는 와중에 월급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없어지는 청년층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고령자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영화는 너무나도 적나라한 현실을 조명한다.
결국 타깃은 고령자에게로 향한다. 정확히는 힘 없고 돈 없는 고령자. 이 지점이 섬뜩하다. 75세 이상 고령자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시 나라에서 안락사를 지원해 준다니 말이다. 들여다보면 10만 엔을 주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고,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인데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일본은 본래 삶과 죽음을 따로 떼어놓지 않았다느니, 당신이 이 나라의 미래이자 후세를 위해 올바른 선택(죽음)을 해야 한다느니 떠들어댄다.
근원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영화 < 플랜 75 > 스틸 이미지.
찬란
'플랜 75'는 태어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건다. 명제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실상 죽음을 조용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힘 없고 돈 없는 고령자로 계속 살아가는 건 그 자체로 '볼품없고 남부끄럽고 나쁜' 행동 양식이 돼 버렸다.
영화 속의 허구, 지극히 현실적인 허구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 이 프로그램과 비슷한 류의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시간이 더 흘러 법안이 통과되면 세상은 그야말로 무한 서바이벌 체제에 들어설 것이다.
몸과 마음이 여전히 젊은 고령자들이 죽음으로 몰릴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 대상에 '나'도 포함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떨린다.
이 영화, 설정 하나만으로 근원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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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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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이상의 고령자가 죽음 택하면, 돈을 주겠다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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