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지원은 자기 자신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간다.
tvN
민환과 수민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상황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면서 지원은 회사 안에도 곳곳에 폭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툭하면 "여자들은 이래서 안 돼"라며 성차별 발언을 하는 김경욱 과장(김중희), "이렇게 예쁜 여직원이 행사의 꽃이 되어야 한다"는 왕흥인 상무(정재성)가 보이고, 자신이 전과는 다르게 꾸미고 나타나자 남자친구가 회사 직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열심히 일하면 남자들에게 매력 없다고 욕먹고, 일에 서툴면 이래서 여자들은 안된다고 비난받는 이중구속의 메시지도 감지해낸다.
나는 드라마 속 지원이 처한 이런 상황이 어쩌면 실제 여성들의 현실이 압축된 버전이 아닐까 싶었다. 드라마처럼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은 이제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결혼해서 메롱' 되고 '안 예뻐서 메롱' 됐다는 여자 직원을 품평하는 김 과장의 멘트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원은 이런 현실에도 저항한다. 수민을 제외한 다른 여성 동료들과 연대해 대응하기도 하고, 미래를 알고 있다는 장점을 이용해 왕 상무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관찰하는 자기를 활성화해 자신과 주변을 새롭게 보고 용기를 내 저항하자, 운명인 줄 알았던 현실도 조금씩 달라진다.
이렇듯 지원은 우리가 스스로를 조금 멀리 떨어져서 관찰할 때 어떤 힘이 생기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관찰하는 자기를 활성화하는 것은 나 자신은 물론, 나를 둘러싼 환경의 모순까지 알아차리게 해준다. 반면, 2023년의 지원이 그랬듯, 스스로를 관찰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매몰되어 있을 때 우리는 나를 괴롭게 하는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실의 부조리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관찰하는 자기의 활성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금, 무언가 억울하고 어딘지 삶이 훼손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조금 멀리 떨어져서 나 자신과 주변을 관찰해보자. 일기를 쓰는 내가 되어, 일기 속의 나를 관찰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주변이 보일 것이다. 그럴 때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차별과 편견, 폭력들을 잘 보게 되고, 이에 저항할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 <내 남편과 결혼해 줘>의 지원처럼 말이다.
덧) 이 드라마를 볼 때 역시 스토리에 매몰되거나 빠져들기보다는 조금 거리를 두고 '관찰하면서' 보기를 추천한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드라마 자체의 시선 역시 여성을 '대상화'하기 때문이다.
민환을 유혹하는 수민의 몸을 비추는 장면들, 민환과 친구가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심지어 여자 친구의 친구와 잤다는 걸 자랑한다), 여자친구가 예뻐졌다며 민환을 회사의 사원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장면 등은 여성을 대상화한 시각이 드러난 부분이었다. 나는 이런 장면들이 이야기 전개상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들과는 거리를 두고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시청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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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