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은 '내 안의 가부장'으로부터 해방되는 법을 보여주었다.
JTBC
하지만 정숙은 이 '내 안의 가부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보여준다. 비록 남편의 외도라는 충격적인 일을 겪은 후이긴 하지만, 정숙은 "시어머니와 남편과의 상의는 필요없다"며 독립을 선언한다. 정숙을 좋아하는 로이킴(민우혁)이 조언할 때도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저 스스로 찾아볼게요" 라고 말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드라마 말미 정숙은 자신의 만의 색을 담은 가정의학과 의원을 개원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 된다.
정숙은 이렇게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며 행복해지는 법을 잘 보여주었다. 여기저기 '미안해'하며 살고있는 현실의 많은 여성에게 귀감이 되어 주었으리라 믿는다.
민들레 : 엄마를 버리고, 나 자신이 되다
한 사람을 그 자신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만이 아니다. 때로는 부모나 가까운 이들, 그러니까 원가족(내가 태어난 가족)이 내 삶을 막아서기도 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들레는 자신을 침해하는 엄마를 버리고 자신을 찾은 매우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인정받는 간호사 들레는 열심히 일하지만, 표정이 없다. 실수 없이 환자들을 대하지만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그녀에겐 도박에 빠진 엄마가 있다. 들레는 엄마의 빚을 대신 갚아주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늪 속에서 헤맨다. 그런 그녀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여환(장률)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금수저' 여환에게 "자신을 만나는 건 똥밟는 것"이라며 모질게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들레의 세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애쓰는 여환의 모습에 들레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를 버려라. 내 환자들이라면 이렇게 말해줬을 것"이라는 여환의 조언을 실천해 낸다.
어쩌면 들레의 이런 모습이 모질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도 저마다의 사연과 상처가 있는 사람이기에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 부모를 감싸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의 언행이 나의 삶을 방해하고 고통 속으로 몰고 간다면 들레처럼 단호한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이는 나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고, 오히려 부모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들레의 경우, 들레가 더 이상 어머니에게 돈을 주지 않음으로 해서 어머니 역시 도박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들레가 어머니의 도박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은 상대방을 도움으로써 오히려 그를 망치는 '인에이블러'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땐 단호하게 선 긋고 도움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상대방과 나 모두를 구하는 길이 된다. 하지만, 나를 부모에게 속해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효 사상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들레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낸 정말 용감한 여성이었다. 더 박수 쳐 주고 싶은 건 엄마를 버리고 간 종착지가 '남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엄마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도와준 여환에게 의지하는 것을 해피엔딩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들레는 여환의 품 대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난다. 여환 역시 이런 들레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데 이 커플은 서로를 소유하거나 구속하지 않으면서 존재 자체로서 사랑하는 법을 잘 보여주었다.